you are what you choose (feat. 마당에서 점심식사)

2021. 4. 23. 15:11관찰과 기록, 성찰과 결행/지난 이야기

 

인생은 새옹지마라 했던가. 작년 봄은 일이 많이 줄어 의도치 않게 쉬는 날이 많았음에도 몸과 마음은 30년 생애를 통틀어 가장 힘들었는데, 올해 봄은 일 때문에 분주하지만 그 어느 해보다 건강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꽃 한 번 제대로 들여다 볼 틈 없이 이 좋은 계절을 보내는 것 같아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러다 며칠 전에 오후 반 나절 동안 짬을 냈다. 그 귀한 시간에 무얼 했느냐 하면, 바로바로바로! 장을 보고 감바스 알 하이요를 한 냄비 끓였다. 그리고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기왕 장을 본 김에 빠에야도 만들고 그릭샐러드도 만들었다. 저녁에는 부모님과 빠에야를 먹었고, 그 다음 날에는 마당으로 소풍(?)을 나왔다. 얼떨결에 생긴 혼자만의 근사한 식사 시간! 

 

식사를 하며 나의 1/4분기를 이끌었던 중요한 상징적인 사건들에 대해 되짚어 보았다. 특히 올 봄 가장 많이 했던 생각에 대해서.

그 중 첫째는 의도적으로 좋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어떤 사람의 고유한 정체성에 대해 '찾아야 하는 것(things to find)', 그러니까 태생적으로 주어진 기질 혹은 성장과정에서 획득한 독특한 특성들을 발굴해서 발현시키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정체성이란 '만들어 가는 것(things to make)'에 더욱 가까운 무엇은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정체성이라는건 'you are what you choose*', 내가 결정한 무수한 선택들의 총합이라고 여겨진다. (*choose에는 모든 것들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eat, read, have, meet...)

나 스스로를 '선택하는 자(person who makes choices)'로 경험하면서 부터, 자연스럽게 더 이상 내 삶에서 나 자신을 소외시킬 수 없게 되었다. 그 때부터 '좋은 선택'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나를 행복하게 하고 성장하게 하고 건강하게 하고 열리고 자유롭게 만드는 장소와 시간, 사람들. 그것을 의도적으로 선택하고 그런 상황 안에 나를 놓는 것이 삶의 아주 큰 재미고 행복이라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더불어 언젠가 그(엄청난 애증을 경험케 했던 그 사람)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내가 선택하지 않으면 결국 누군가에 의해 선택되고 끌려갈 수 밖에 없더라". 맞는 말이다. 내가 주체적으로 내 설 자리를 고르지 않으면 누군가가 짠 판 위에 게임 말로 뛸 수 밖에 없다. 게임 메이커가 될 것인가 게임 플레이어가 될 것인가. 게임 플레이어가 된다면 나는 어떤 말을 고를 것인가. 그것 역시 기본적으로 자신의 선택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주체적으로 내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나가려는 내적인 힘이 없으면, 그저 세파에 쓸려내려가는 무력한 개인으로 밖에 존재할 수 없다.  

 

둘째는 의도적으로 낯선 곳에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혼자 겨울 한라산의 눈보라에 갇혔던 기억처럼 말이다. 특히 나는 살기 위해서, 그런 시간을 주기적이고 필사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무뎌지는 삶의 감각을 깨우고 오롯하게 나 스스로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정말 순식간에 중심을 잃고 과거의 방식으로 회귀해버리 때문에 더더욱...

 

셋째는 생각만 하지 말고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단을 굳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듯 보인다. 아주 작은 단위로 일을 쪼개서 하나씩 해나가는 것, 그렇게 어제보다 오늘이 아주 작게 나마 나아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단지 나와 타협하지 말고 스스로와 약속한 것은 지켜야 하다는 것, 밀고 나가야 하는 시점에는 뚝심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 

 

4월도 겨우 일주일만 남겨두고 있다. 그 사이 날도 많이 더워졌다. 연초부터 미뤄둔 일들을 잘 마무리하고 다시 빈 손으로 새로운 시간을 맞아보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또 옅게 올라 앉은 먼지같은 묵은 일들을 잘 털어내고, 새로운 기분으로 5월을 맞아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