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ence, existence/1월 1일 (13)
-
2022년을 보내며
아직은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2022년 한 해를 정리해보려고 한다. 1. 죽음에 대하여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2월의 어느 날,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유난히 굵은 눈발이 거칠게 날리는 추운 날이었다. 할아버지의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가족들과 함께 천안의 순천향대 병원으로 부랴부랴 달려갔다.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엄마는 전 날 꾼 '무서운 꿈(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꿈)'의 이야기를 계속 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동안 저녁하늘의 어스름은 깜깜한 밤 하늘로 뒤바뀌었는데, 병원에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 역시 점점 어둡고 무거워졌다. 우리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였다. 하필 같은 날 안철수 씨의 선거유세버스 사망사고가 있었고 사망자 중..
2022.12.21 -
2021년을 보내며
[1/4분기] 눈보라 속에서 치른 성인식 기상이 좋지 않던 1월의 어느 날, 혼자 겨울 한라산을 등산하다가 눈보라에 갇혔다. 대부분의 등산객은 하산을 했고 남은 소수의 사람 조차 서둘러 대피소로 향했기 때문에 나는 홀로 그 상황을 겪게 되었다. 동서남북은 물론 1m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이정표는 눈밭에 파묻혀 나 같은 초행길 산객은 어디가 등산로인지 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거센 눈보라에 걸어온 발자국마저 지워져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나는 제자리에서 우두커니 서서 내 뒤 혹은 맞은편에서 걸어올지도 모를 누군가를 기다렸다. 하지만 사람이 올 기미는 전혀 없었고 기상은 점점 나빠졌다.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없으며 전적으로 내가 선택하고 생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
2021.12.26 -
2020년을 보내며
올 한 해,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타마 싯다르타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싯다르타가 29세에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것들을 벗어던지고 출가한 것 처럼 본디 인간에게 서른 즈음의 시점이 종전의 삶을 모두 비워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때는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올해 서른 살이 된 나 역시 '내가 아닌 것'을 삶에서 모두 끊어내려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한 해를 보냈다. 작년에 이어 올해 역시 몸도 마음도 너무 고통스러웠다. 우선, '믿음'이라는 미명 아래 애써 외면해왔던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moment of truth*'는 애초에 피하고 싶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 말의 의역은 '위기의 순간'에 가깝다고 한다) '어른'이라고 믿고 따랐던 그는 아주 오랫동안 내 나이 또래의 여자들에게 더러운 ..
2020.12.26 -
2019년을 보내며
열아홉살에서 스무살로 넘어가던 자정, 그러니까 10년 전의 밤을 더듬어보면 당시의 나는 희미한 기대에 좀 들떠있었던 것 같다. 도무지 알 수 없고 막막하기만 한 것들이 20대를 거치는 동안 선명해질 것이라는 것, 그래서 서른 살의 나는 적어도 사랑과 일에 대해 결론이 나있는 상태일 것이라는 기대. 그 당시 그리도 바랐던 서른을 맞은 지금의 나는 19살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변한 것이 있다면... 다가올 십 년이 더 이상 두근두근하지는 않는다는 것, 막막하고 불안한 가운데 점점 의기소침해진다는 것, 지난 십 년처럼 다가올 십 년 역시 헤매고 방황하며 보내지 않을까 하는 걱정, 조금만 삐끗하면 정말 볼폼없는 모습으로 40대를 맞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낭만은 고갈되고 탄력을 잃는 피부가 무엇인..
2020.01.14 -
2018년을 보내며
유시민 작가는 삶을 지탱하는 네 가지 축으로 일, 사랑, 놀이, 연대를 제시하는데 나 역시도 그러한 기준에 맞춰 올 한 해를 평가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네 가지 키워드로는 분류하기 어려운 카테고리들이 있어 임의대로 카테고리 설정을 했다. [사랑] 2015년부터 질질 끌어오던 4년의 시간에 종지부를 찍은 한 해라고 느껴진다. 송과 다시 연애했지만 헤어졌다. 상반기에는 연애같지도 않은 연애를 하며 참 외롭고 마음 아팠으나 나 스스로에게 '신뢰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응당 견뎌야 하는 시간'이라고 끊임없는 주문을 걸었다. 차갑게 얼어붙은 그 친구 마음을 녹이려면 나는 한결같이 따듯하고 일관된 모습으로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겉으로 티내지 않으려 했지만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하반기에는 내가 방을 얻으면서 관계..
2019.01.07 -
2017년을 마무리하며
스물 일곱살의 끝을 정리하기 위해 유리잔에 와인을 조금 담아 책상 앞에 앉았는데, 왠걸. 타이핑을 좀 해볼까 하던 찰라, 컵이 넘어지면서 와인이 쏟아졌다. 부랴부랴 정리를 하고 다시 글을 쓴다. 정확히 일 년 전, 일과 사랑 모두가 힘들었던 스물여섯 살의 나는 한 해를 정리하는 글을 쓰며 다가오는 한 해에는 내가 나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일 년이 지난 지금, 찬찬히 생각해보면 당시의 소망은 얼추 이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물 일곱은 전반적으로 운이 좋은 한 해 였다. 직장에서 나를 애먹이던 사람들은 해가 바뀌면서 직장을 그만두거나 다른 사무실로 전출됐고 나에 대한 헛소문들에 대해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해명을 할 기회가 생겨 자연스럽게 그간의 오해들이 풀렸다. 다만..
2018.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