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과 기록, 성찰과 결행/공부와 스크랩(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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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조각/정호승
산산조각 정호승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 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2023.10.21 -
민달팽이를 보는 한 방식 / 김선우
가출이 아닌 출가이길 바란다 떠나온 집이 어딘가 있고 언제든 거기로 돌아갈 수 있는 자가 아니라 돌아갈 집 없이 돌아갈 어디도 없이 돌아간다는 말을 생의 사전에서 지워버린 집을 버린 자가 되길 바란다 매일의 온몸만이 집이며 길인, 그런 자유를…… 바란다, 나여
2022.02.02 -
Tango negro - Tocá tangó (Juan Carlos Cáceres)
요즘 땅고 음악 안듣는데 유투브 알고리즘이 추천해준 앨범. 좋아했지만 제목은 모르던 음악들이 많이 들어 있었다. Tango Negro: 1- Tango negro 2- Tango retango 3- Malevaje 4- Serafín 5- Triste febrero 6- Como dos extraños 7- Candombre del cajón 8- Tengo miedo del olvido 9- Sin sentido 10- Otra vez 11- Hoy simplemente 12- El curro Tocá tangó: 13- A ver si te animás 14- Ese carnaval 15- Tocá tangó 16- Camila 17- Unas carabelas 18- Currar es un debe..
2022.01.15 -
<이른 아침> 박순원
이른 아침 박순원 나는 아직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는데 이른 아침 아내가 배춧국을 끓인다 배추는 이른 아침부터 불려 나와 끓는 물속에서 몸을 데치고 있다 배추는 무슨 죄인가 배추는 술 담배도 안 하고 정직하게 자라났을 뿐인데 배추에 눈망울이 있었다면 아내가 쉽게 배춧국을 끓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래 나도 눈망울을 갖자 슬픈 눈망울 그러면 이른 아침부터 불려 나가 몸이 데쳐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렁그렁 소 같은 눈망울로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나를 어쩔 것인가 아, 하나의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꼭 오늘 아침은 아니지만 우리가 가끔 먹는 동탯국 머리째 눈망울째 고아내는 시뻘건 그 국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 이불 속에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2021.09.05 -
손택수 시인의 <나뭇잎 흔들릴 때 피어나는 빛으로>, <나무의 꿈>
어버이 날, 병원에 계신 엄마에게 망고 튤립 몇 송이와 손택수 시인의 를 선물하였습니다. 여러가지를 두고 고민하다 이 시집을 고르게 됐는데, 제가 좋아하는 시가 실려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이유였습니다. 저는 손택수 시인의 시 중에서도 특히 를 좋아합니다. 이 시를 통해 손택수 시인을 알게 되었고, 또 마음이 벅하고 힘겨웠던 시기에 위로 받았기 때문일겁니다. 이 시를 읽다보면 저는 제가 마치 5월 초입의 맑은 날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맑고 파아란 하늘, 일렁이는 초록잎의 나무와 그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 그늘에서 즐기는 산뜻하고 시원한 바람... 그 속에 가만히 누워 나뭇잎이 일렁이는 것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요. 그렇게 일상 속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하곤 합니다. 때문에 손택수라는 이름을 들으..
2021.05.29 -
소유가 아닌 빈 마음으로 / 칼릴 지브란
소유가 아닌 빈 마음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받아서 채워지는 가슴보다 주어서 비어지는 가슴이게 하소서 지금까지 해왔던 내 사랑에 티끌이 있었다면 용서 하시고 앞으로 해나갈 내 사랑은 맑게 흐르는 강물이게 하소서 위선보다는 진실을 위해 나를 다듬어 나갈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바람에 떨구는 한 잎의 꽃잎으로 살지라도 한 없이 품어 안을깊고 넓은 바다의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바람 앞에 쓰러지는 육체로 살지라도 선 앞에서는 강해지는 내가 되게 하소서 철저한 고독으로 살지라도 사랑 앞에서 깨어지고 낮아지는 항상 겸허하게 살게 하소서 칼릴 지브란
2020.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