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머무를 이야기(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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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썼던 몇 가지의 단상 모음
1. 우리의 관계는 어디서부터 끝이 난걸까?(아래의 1~6 중 어디에서 부터 라고 보아야 할까?) 우리가 해온 것은 정말 사랑이었을까? 그는 내게 아주 일찍부터 너무 사랑한다며 결혼하고 싶다고 졸라댔지만, 그는 연애의 시작부터 끝까지 내게 제대로 진실했던 순간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와 만나며 끊임없이 이유모를 찝찝함과 불안함을 느꼈는데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 모든 것이 합당한 감정이었다. 지금까지 그가 내게 거짓말을 한 이유는 "이 관계를 잃기 싫어서", "네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기 싫어서"였다. 지금까지 그는 내게 매 사건이 생갈 때마다 펑펑 울며 '미안하다', '두 번 다시 거짓말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정작 그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마지막 사건 이후 그는 내게 고민할 시간을 ..
2023.04.21 -
말로 끼를 부리는 것
어느 지점을 넘어가면 말로 끼를 부리기 시작해. 말로 사람 시선 모으는 데 재미 붙이기 시작하면 막차 탄 거야. 내가 하는 말 중에 쓸데 있는 말이 하나라도 있는 줄 알아? 없어, 하나도. 그러니까 넌 절대 그 지점을 안 넘었으면 좋겠다. 정도를 걸을 자신이 없어서 샛길로 빠졌다는 느낌이야. 너무 멀리 샛길로 빠져서 이제 돌아갈 엄두도 안 나. 나는 네가 말로 사람을 홀리겠다는 의지가 안 보여서 좋아. 그래서 네가 하는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귀해. - 나의 해방일지 2화 中 언젠가 종호오빠가 술자리에서 요즘 보고 있는 드라마가 참 좋다며 알려줬던 대사인데, 참 많이 공감이 돼 별도로 저장을 했었다. 이 대사가 이 시점에 다시 생각난 것은 순전히 남자친구 때문이다. 때때로 오빠가 말로 끼를 부릴 때..
2023.02.22 -
너에게 배운 사랑
1. 너를 만난지 여덟 해가 지난 지금에서야, 네가 나에게 줬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어. 정말 많이 사랑했고 고마웠어. 언제나 너의 건강과 행복을 빌어. 2. 남자친구와 긴 통화를 하던 도중에 중요한 어떤 사실을 깨닫고 펑펑 울었다. 내가 그의 전 여자친구를 부러워했다는 것, 질투했다는 것,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아닌 그 사람을 더욱 신경쓰는 남자친구를 보며 자존심이 상했다는 것. 그러나 자존심 때문에 결코 꺼내놓지 않았던 마음들이었다. 마음 속에 깊이 박혀있던 말들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마음 속에 세찬 비가 내려 상처 주위의 지저분한 것들을 모두 씻어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펑펑 우는 나에게 남자친구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 때문에 이렇게 상처받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였..
2023.01.18 -
그가 보낸 답시
남자친구와 불편한 대화를 이어 나가던 중, 내가 그에게 이수동 화백의 '동행'을 들어 우리 관계에 대한 불만을 성토 했다. 우리 관계는 마치 내가 나무 같고 네가 꽃같다고. 내가 손을 놓으면 너는 그대로 손을 놓을 것 같다고. 우리는 꽃과 나무가 아니라 서로에게 나무로 존재할 수 없겠냐고. 네가 내 맘에만 의지해 이 관계를 해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힘겨운 시간과 상황이 오더라도 서로의 곁을 든든한 나무처럼 지켜주면 좋겠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남자친구는 침착하게 내 이야기를 찬찬히 듣더니 자신의 마음을 담담히 들려주었다. 그와의 긴 대화를 마치고 나니 깊게 패인 상처 위로 또 한 겹의 얇은 새살이 돋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얼마 뒤 그에게서 온 답시. 늘 더 큰 사랑으로 감싸안아..
2022.11.24 -
결자해지
1. 어제 그가 했던 말 중에서 잊히지 않는 두 가지를 옮겨 적어본다. 하나, '내가 한 행동이 네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적어도 스스로에겐 떳떳하다. (그러니 네가 인정할 수 없다면 헤어지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둘, '최선을 다하긴 하겠지만, 이 문제가 해결 할 수 있는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어 불안하다.(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면 빨리 헤어지는 것이 맞다)' 이 두 가지의 말을 듣고 내가 느낀 기분에 맞는 단어를 굳이 골라야 한다면 '좌절감'인데, 나와 그가 서로를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의 차이를 극명히 보여주는 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어떤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에겐 우리 관계의 한계가 명확한 것처럼 느껴졌다. 2. 위의 두 가지 말이 불편했던 이..
2022.11.23 -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
1. 수면 위에 고요히 떠있는 듯 보이는 오리가 실은 물 밑에서는 분주히 발을 구르는 것처럼, 요즘 나의 일상 역시 안정을 찾아가는 듯 보이지만 실은 그렇게 하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투여하고 있다. 내가 잘못하거나 원인제공을 한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상대보다도 내가 더 많이 흔들리며 혼란한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많은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는 듯 보이는 것이 묘하게 억울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자잘한 감정의 굽이굽이들을 스스로 소화시키는 대신 상대에게 너무 많이 이야기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이야기를 꺼낸 밤에는 센치한 마음에 잡아 먹히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혼자 감당해야 '지저분한 감정'을 상대방에..
2022.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