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23. 20:38ㆍ당분간 머무를 이야기
1. 어제 그가 했던 말 중에서 잊히지 않는 두 가지를 옮겨 적어본다.
하나, '내가 한 행동이 네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적어도 스스로에겐 떳떳하다. (그러니 네가 인정할 수 없다면 헤어지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둘, '최선을 다하긴 하겠지만, 이 문제가 해결 할 수 있는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어 불안하다.(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면 빨리 헤어지는 것이 맞다)'
이 두 가지의 말을 듣고 내가 느낀 기분에 맞는 단어를 굳이 골라야 한다면 '좌절감'인데, 나와 그가 서로를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의 차이를 극명히 보여주는 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어떤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에겐 우리 관계의 한계가 명확한 것처럼 느껴졌다.
2. 위의 두 가지 말이 불편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하나, 왜 그는 결자해지하지 않는가? 일렬의 사건들은 그가 초래한 일이므로 최소한 그는 누구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맞지 않나? (물론 나 역시도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떳떳하므로 결정은 네가 하라는 말'은 '나로서는 이 관계를 위해 더 이상 할 것이 없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 것인지 모르겠다.
둘, 나는 상대가 '어떤 어려운 시간과 문제가 우리 앞에 다가온다 하더라도 듬직한 나무처럼 너와 함께 할게, 이 관계를 포기하지 않을게.' 라는 태도로 대화에 임해주길 원했다. 적어도 나는 그것이 함께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태도라고 생각하니까.
그는 기본적으로 '억지로 인연을 이어나가려고 하면 끝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나도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해결 가능성'을 일찍부터 알 수 있는 문제들도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일들도 있다. 다시 말해, 해결할 길 없어 보였던 문제도 두 사람이 맘 먹으면 의외로 손쉽게 풀리기도 하고, 당연히 해결될 줄 알았던 일이었으나 잘 안풀리는 일도 있기 마련 아니던가. 나는 정말 소중한 것을 지켜야 하는 순간에는 모든 가능성들을 열어놓고 부딪혀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그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겨우 이만한 일'에도 이러한데, 앞으로 다가올 더 큰 어려움 앞에서 그는 얼마나 더 우유부단할까. 조금만 숨 막히고 어려워도 언제고 관계를 놓아버리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믿고 그와의 관계에서 최선을 다하고 애쓸 수 있나. 두 사람이 함께 애써도 어려운 것이 연인/결혼 관계일진대,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는 애시당초 지켜질 수 없는 것 아닌가. 그의 말처럼 내려놓아야 하나. 그것이 서로 '덜 다치며', 깨끗한 기억으로 관계를 마무리하는 최선인가.
3. 그가 내게 '너도 만만찮은 진상'이라고 했던 말실수를 또 그저 말실수로 넘길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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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지만 이 보다 더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내가 스스로에게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묻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관계 역시도 보다 주체적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이성적이고,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내가 가장 존엄할 수 있는 방식으로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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