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

2022. 10. 24. 00:07당분간 머무를 이야기

1. 수면 위에 고요히 떠있는 듯 보이는 오리가 실은 물 밑에서는 분주히 발을 구르는 것처럼, 요즘 나의 일상 역시 안정을 찾아가는 듯 보이지만 실은 그렇게 하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투여하고 있다. 내가 잘못하거나 원인제공을 한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상대보다도 내가 더 많이 흔들리며 혼란한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많은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는 듯 보이는 것이 묘하게 억울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자잘한 감정의 굽이굽이들을 스스로 소화시키는 대신 상대에게 너무 많이 이야기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이야기를 꺼낸 밤에는 센치한 마음에 잡아 먹히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혼자 감당해야 '지저분한 감정'을 상대방에게 필요이상으로 많이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어 창피하기도 했다가, 그만큼 내 그릇이 크지 못한 것 같이 느껴저 울적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게 왜 혼자만의 몫이어야 하는지 짜증도 났다가, 나의 '쿨하지 못함'으로 인해 이 갈등이 적당한 선에서 매듭지어지지 못하고 계속 상처가 악화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한다. 다시 말해, 어디까지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고 어디까지 함께 공유해야 하는 것인지 갈피가 잘 잡히지 않는 것이다.  

 

2. 그간 혼자인 삶이 편하다고 느꼈던 것 중 하나는 내 앞의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의지를 할 대상이 없었기 때문에 전부 스스로 감당하는 것 이외에 다른 옵션이 주어지지 않았다. 찍소리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같이 꾸려나가는 관계 속에서는 굳이 내가 감당할 필요가 없었던 '피곤한 일'들에 대해서도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이, 그것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주제-그래서 여러차례에 걸쳐 상대방에게 '이 상황만큼은 경험하고 싶다'고 누차 밝힌-에 있어서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 마음을 더욱 힘들게 하였다. 그러나 함께 하기 위해서 몇 년 동안 익숙해졌던 '싱글의 삶'과는 분명 다른 태도로 관계에 임해야  하는 부분이 있을 터이니...     

 

3. 내일 저녁에는 이라를 만난다. 이라는 오랜 시간 고민하던 주제에서 결론을 냈다. 그 친구의 마음을 온전히 집중해서 찬찬히 살피고 듣고 헤아리고 싶다. 그만큼 내게 몇 안되는 귀한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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