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썼던 몇 가지의 단상 모음

2023. 4. 21. 05:56당분간 머무를 이야기

1. 

우리의 관계는 어디서부터 끝이 난걸까?(아래의 1~6 중 어디에서 부터 라고 보아야 할까?) 우리가 해온 것은 정말 사랑이었을까? 그는 내게 아주 일찍부터 너무 사랑한다며 결혼하고 싶다고 졸라댔지만, 그는 연애의 시작부터 끝까지 내게 제대로 진실했던 순간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와 만나며 끊임없이 이유모를 찝찝함과 불안함을 느꼈는데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 모든 것이 합당한 감정이었다.

지금까지 그가 내게 거짓말을 한 이유는 "이 관계를 잃기 싫어서", "네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기 싫어서"였다. 지금까지 그는 내게 매 사건이 생갈 때마다 펑펑 울며 '미안하다', '두 번 다시 거짓말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정작 그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마지막 사건 이후 그는 내게 고민할 시간을 달라며 일주일을 요구했고 나는 얼마든지 그러라고 하였다. 그는 언제나 그랬듯 나름대로는 자기를 반성하는 시간을 갖고 있는 듯 하지만, 나는 이 관계를 정리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왜냐면 (1)나는 이미 그에게 믿음을 잃었고, (2) 8개월 간의 연애에서 그에게 충분히 많은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하며,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에 상처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받았다.  (3) 이성적인 상태에서 세워놓았던 exit에 대한 기준들이 이미 모두 무너트린 상태이며 (4) 내가 그에게 추하게 굴고 있으며(=내가 이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5) 주변인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를 계속 한다'고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겠다. (6) 무엇보다 이 문제가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농후해보인다.

그는 분명 좋은 점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이 사실에 더 이상 면죄부를 주지 말자. 나는 그의 엄마가 아니다.  

 

1) 연애 전: 나는 그에게 두 가지를 약속을 받았다. (1)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 (2) 전 연인과의 관계가 완전히 종료된 상태에서 나를 만날 것

 

2) 연애 시작~1개월 차: 그가 중요한 순간-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때, 첫키스 할 때, "내 취향은 '000'지"-에 나를 전 여자친구 이름으로 불렀다. 세 번이나.

 

3) 연애 1개월 차: 그의 전 연인에게 전화가 왔다. 남자친구에게 앞선 두 가지 약속에 추가로 (3) 전 연인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연락/접촉이 있으면 내게도 그 사실을 공유해줄 것을 약속해달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그가 내게 사소한 거짓말을 꽤 많이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4) 연애 1~8개월:

4.1. 전 연인이 남자친구에게 지속적으로 집요하게 연락하고 집과 회사로 찾아와 만남을 요구했다. 그 사이 남자친구는 나에게 3번의 상황을 기점으로 전 연인에게 어떤 연락이나 접촉도 없었다고 거짓말 하였다. 그는 내가 알게 될까봐 전 연인에게서 걸려온 전화와 문자, 방문의 흔적을 철저히 지웠다. 내가 찝찝함을 느낄 때마다 자신은 떳떳하다며 나를 나무랐다. ("너도 진짜 진상이다")

4.2. 남자친구 휴대전화 사진첩을 함께 보다가, 전 연인이 아닌 다른 여성과 함께 찍은 사진이 약 50장 가량 무더기로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정황상 데이트하는 사진이 분명하였으나, 남자친구는 절대 그런 사이가 아닌 회사동료 A라고 했고 나는 일부 사진(흔들린 사진 등)은 지워도 되지 않겠냐 하였으나 남자친구가 거절해 그냥 넘어갔다.

4.3.  남자친구 휴대전화에서 성매매 업소 (ex. 종로 오피, 종로 휴게텔, 종로 출장마사지) 링크를 발견하였고 남자친구는 절대 성매매를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5) 연애 8개월 차: 남자친구가 4.1에서 한 말이 거짓말임을 고백했다. 그간 거짓말(더 나아가 가스라이팅)을 한 것에 참을 수 없을만큼 화가 났으나 상대 여성의 행동이 '스토킹'이었기 때문에 그의 입장을 이해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남자친구가 전 연인을 단호하게 정리하는데 어려워 하여 결국 내가 개입하여 정리를 도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오히려 나에게 정당하지 않은 비난을 하기도 하였다. ("집요하다. 우리 아버지를 떠올리게 해.")

5.1. 전 연인을 정리하는 문제로 싸운 날, 남자친구가 잠결에 갑자기 다른 여자를 지칭하며 '와 짱 예쁘다'라고 발언. 

 

6) 연애 9개월 차:  4.2에서 언급한 상대가 실은 남자친구의 썸녀인 B였다. 사진 속 주인공이 B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남자친구에게 '정말 그 여성분이 A가 맞냐'고 물었으나 남자친구는 'A가 맞다'며 수 많은 거짓말을 한 시간 가량 했다. 결국 내가 B의 사진을 보내며 내가 B를 알고 있으니 더 이상 거짓말 하지 말라고 하니 남자친구는 그제서야 'B가 맞다'고 실토하였다.

6.1. 며칠 뒤 남자친구와 만나 술을 마시다 취한 내가 그를 꼬집고 때려 그의 팔과 옆구리에 멍이 들었다. 다음 날, 사과하고 내 행동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2. 얼마 전 꿈에선 송과 그의 어머니가 등장하였다. 나와 남자친구는 상당히 멋진 집에서 그들에게 근사한 저녁식사를 손수 만들어 대접하였는데 분위기가 매우 화기애애하고 좋았다. 식사를 다 마쳐갈 때 즈음 나는 그 친구 어머님에게 선물을 드렸고, 어머님은 "왜 나에게 이렇게까지(근사한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선물까지 챙겨주는 것) 잘 해주는거니"라고 물어보셨다. "사는 동안 한 번은 꼭 만나 뵙고 잘해드리고 싶었어요." 그간의 진심이었다.

 

 

 

 

3.  힘들지만, 남자친구의 외로웠을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는 고마워하고 또 고마워했다. 그러나 그 고마움의 대상은 내가 아닌 분석가인듯 보인다. 그는 여전히 이 사건이 왜 그렇게까지 심각한 일인지에 대해선 잘 모르는 듯 하고, 내가 그에게 불만을 말하는 것이 그에게는 '혼나는 일' 이상도 이하도 아닌듯 싶다. '내가 잘못했으니 찍 소리 안하고 혼나겠다만... 잔소리를 견디는건 빡세다.'는 마음이 그의 말 여기저기서 묻어나오기 시작한다. 다 내려놓고 싶은 순간들이 찾아올 때마다 마음이 무너진다.

 

 

 

 

4. 말이 아닌 행동으로만 판단하자면,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하지만 뭐.... 그건 내 몫이 아닌걸 어쩌겠는가. 내 몫이 아닌 것으로 괴로워 하지 말고 그것은 상대에게 정중히 되돌려 주자. 나는 잘 사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나와 상대에게 모두 떳떳했지 않았는가. 나는 그저 나에 집중하고 내가 했던 못난 짓에 대해 반성이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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