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머무를 이야기(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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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간만에 숨 돌릴 틈이 생겨 좋아하는 공간에 갔다. 가회동의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언제 가든 여전히 제 자리를 건재하게 지키고 있는 멋진 공간. 이 공간에서는 멋진 것들을 절로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탁월한', '아름다우면서도 기능적인', '철학적인'과 같은 것들. 잘 빚어진 존재는 굳이 어떤 설명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가치와 지향을 전한다는 사실을 나는 이 곳을 통해 배웠다. 중정에 들어서면 가슴이 마구 뛴다. 오늘은 어떤 탁월한 생각을 만나게 될까, 어떤 멋진 영감을 얻게 될까. 늘 그렇지만,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의 북 큐레이션은 진심 최고다. 디자인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거나 높은 수준의 안목을 갖추지 못한 자는 감히 엄선해낼 수 있는 큐레이션이라는 것을 이번에 한번 더..
2022.06.28 -
잡설
1. 어제는 몇 년 만에 정윤오빠를 본 자리에서 결혼을 앞둔 그의 여자친구를 소개 받았고 저녁을 먹었다. 결혼을 앞둔 정윤은 여전히 철이 없어 보였지만, 여자친구에 대한 애정은 정말 많아 보였다. 생각해보면 정윤 알고 지낸지도 7년~8년 이네. 많이 행복해라, 정윤! 2. 둔산동에 있는 굉장히 유명한 낙지볶음집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나는 S가 떠오른다는 이유로 몇 년 동안 그 집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았었다. 그곳에서 결혼을 앞둔 정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낚지볶음을 퍽퍽 퍼먹었다. 그렇게 한 때의 기억이 서렸던 공간이 또 다른 추억과 기억들로 덧입혀지고 또 덧입혀져 가는 과정이 삶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려나. 3. 그 자리가 파한 뒤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오랜만에 지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왔다. 나는..
2022.05.08 -
막막함에 잠식되는 날들
#1. 지치고 진도는 영 안나가고, 밖에 꽃은 흐드러지게 폈다는데 나는 침침한 실내에서 하루 종일 모니터와 씨름을 거듭하고 있다. 막막하다. 깊은 물 속에 잠겨 숨이 점점 차오르듯 답답하고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사투해야 하는 시간들이 계속 된다. #2. 왜 연애를 안하세요 눈이 높으신거 아녜요 이런 질문 종종 듣긴 했지만 요즘은 더욱 자주 듣는다. 아마 30대 초반의 여자가 선도 소개팅도 연애도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도 몇 년이 됐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퍽이나 흥미로운 모양이다. (내게 말하진 않지만) 어떤 짐작을 하는지도 빤하다. 아, 네. 마지막으로 연애 했던 사람을 잊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요. 마침 일 하느냐 너무 바쁘고 정신 없어 이젠 그런 생각조차 할 엄두가 안나요. 그렇게 ..
2022.04.24 -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에 올려진 듯
1. 무거운 돌덩이를 품고 사는 기분으로 한 달 반을 지내고 있다. 오늘은 가만히 있어도 봉선화 터지듯 눈물이 펑- 터질 것 같은 순간들이 계속 있었다. '저희 사무실은 손 떼겠습니다'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가도,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무거운 마음을 다시 꾹 눌러 삼켰다. 함께 일을 하는 기관 담당자들은 내가 그들을 원팀으로 여기며 진심을 다해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줄까? 혹은 어떻게든 생색내고 '돈 없다'만 외치는 제작사 대표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든, 나는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떳떳하려고- 온갖 애를 쓰고 있다. 정말로, 요즘의 나는 그 마음 하나만 갖고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고 해도 과하..
2022.04.21 -
선욱과의 대화
오랜만에 선욱과 전화를 하고 난 뒤 적는 글. 선욱과 나눈 이야기도 있고 선욱과의 통화와는 무관한 근래의 이야기도 섞여있다. 1. 선욱이 말했다. '단절을 계단처럼 밟아가며 앞으로 나가야해.' (그리곤 자기가 한 말에 흡족했는지 '아, 또 명언 나왔네!'라며 좋아했다.) 선욱의 말처럼 결단이나 상상, 변화는 고립과 단절로 부터 찾아오는 것이리라. 나는 기꺼이 단절의 순간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2. 지난 번의 통화와 마찬가지로 나는 윤을 찍은 선욱에게 '연인에게 안 좋은 점이 보인다고 차라리 쓰레기를 만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냐'며 쓴소리를 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그것이 본의 아니게 선욱에게 어떤 연상 작용을 하게 한 듯 하였고, 덕분에(?) 선욱의 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선욱..
2022.04.18 -
마구 적는 요즘 일들
1. 서촌에서 걷는데 문득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그대 오직 그대 만이 내 첫 사랑, 내 끝사랑')를 듣고 발걸음이 멈췄다. 나중에 찾아보니 의 가사라고. 그 가사를 듣고 곧바로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살면서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고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참 감사하고 귀한 일이다. 삼 년 간의 연애가 끝났다는 사실을 사 년이 지난 이후에서야 간신히 받아들이고 있지만, 서툴게라도 매듭을 짓고 있어서 다행이다. 2. 얼마 전 지하철역을 빠져나오다가 문득 깨달았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도 이 관계가 끝났다는 사실을 맘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이미 많은 것들이 변했다는 것을, 2015년은 ..
2022.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