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을 보내며

2019. 1. 7. 01:03essence, existence/1월 1일

유시민 작가는 삶을 지탱하는 네 가지 축으로 일, 사랑, 놀이, 연대를 제시하는데 나 역시도 그러한 기준에 맞춰 올 한 해를 평가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네 가지 키워드로는 분류하기 어려운 카테고리들이 있어 임의대로 카테고리 설정을 했다. 

 


[사랑] 


2015년부터 질질 끌어오던 4년의 시간에 종지부를 찍은 한 해라고 느껴진다.
송과 다시 연애했지만 헤어졌다. 상반기에는 연애같지도 않은 연애를 하며 참 외롭고 마음 아팠으나 나 스스로에게 '신뢰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응당 견뎌야 하는 시간'이라고 끊임없는 주문을 걸었다. 차갑게 얼어붙은 그 친구 마음을 녹이려면 나는 한결같이 따듯하고 일관된 모습으로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겉으로 티내지 않으려 했지만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하반기에는 내가 방을 얻으면서 관계에 진전이 있는 듯 했으나 결국은 이전과 같은 문제로 비슷하게 갈등하다가 헤어졌다.  갈등상황을 회피하려는 그 친구의 태도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이미 식어버린 그 친구의 마음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그가 잠수를 탄 동안 나는 내가 마치 썩은 마늘이 돼 짓물러지는 듯한 감정에 고통스러워했다. 설익은 두 사람이 버텨낸 지난하고 고단한 관계를 돌아보면 조금 측은하기도 하다. 신뢰를 잃은 관계는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상대방에게 맘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행동들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 내 마음도 내 의지로 할 수 있는게 아닌데 상대의 마음은 더군다나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갈등상황을 대처하고 그런 상황에서 보여주는 행동들이 '진짜'라는 것,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이 지난한 관계의 끝에서 배웠다.   

연애의 끝에서 돌이켜보면 모든 관계의 알파와 오메가는 결국 신뢰가 아닌가 싶다. 흔히들 연인 사이에 관계 파탄의 책임은 5:5로 나눠 갖는다고들 말하지만, 적어도 우리 사이에서 내가 송의 신뢰를 먼저 잃었으므로 관계 파탄의 책임은 내가 더 무겁게 져야 할 것이다.

 

좋아한다고 고백한 사람들이 있었으나 빠르게 교통정리를 했다. 굳이 말하면 서로가 서로를 청산했다고 해야할까. 애시당초 잘 될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다. 내 마음이 송이라는 콩밭에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올 겨를도 없었거니와, 그들과 나는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구석이 너무 많았다. (정치관이나 가치관이 안맞는건 예사요.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를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연애를 할 때 마다 내 생활이나 선택의 기준 대부분을 남자친구에게 맞춰왔었다. 정말 오롯하게 나 하나만을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었던 시간 자체가 너무 부족했다. 나머지 1년은 연애를 하지 않고 내 생활의 중심을 내가 온전히 갖고 있는 한 해를 보내보려고 한다.  

 


[관계] 


가족과 강하게 부딪혔고 그 중에서도 엄마와 관계가 크게 틀어졌다. 표면 상의 이유는 '집안일을 하지 않고 규칙적이지 않은 생활습관'이었으나 실은 '편애와 화풀이'였다고 생각한다. 엄마와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남동생과의 관계도 나빠졌다. 상황이 가장 나빴던 어느 날, 가족 구성원 네 명이 모두 카페에 모여 이야기를 하는데 아빠는 기계적인 중립을 취한다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매우 큰 충격이었다. 나는 집을 나왔고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아빠가 여러모로 많은 개입을 했다. 결과론적으로는 큰 도움이 됐으나 '불완전한 독립'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할머니에게 안부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나를 무조건적으로 아껴주는 이가 곁에 있을 때 잘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인데 물론 처음에는 어색했으나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다.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깜짝 놀랐다.

준이가 한국에 들어왔고 그 자체로 큰 위로가 됐다. 용정, 현영, 주리가 대전에 찾아와주어 기뻤다. 다정언니에게는 어느 시점 이후로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 미안함을 부채의식으로 안고 있다. 종배오빠는 송에게 차이고 슬퍼하는 나에게 '내가 빛날 수 있는 자리에 갈 것 그리고 나를 빛나게 하는 사람과 함께할 것'이라고 조언해 줬다. 준기오빠가 천안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번씩 보고 있는데 준기 특유의 따듯함과 솔직함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야, 너 왜 연애를 그렇게 하냐. 어휴." 



[일] 


올 한해는 내가 모든 프로젝트들을 따왔다. 자연스럽게 일을 함에 있어 주도권을 내가 갖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빠가 내게 불만을 쏟아내지는 않았으나 내가 밤샘작업에서 손을 놓은 것에 대해서는 꽤 불만스러웠으리라고 조심스럽게 짐작한다. 혹자는 내게 오빠와 수익배분비율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보라고 권유했으나 내게는 몇 푼의 돈보다는 태성오빠와의 관계가 훨씬 중요하다. 혹여 오빠가 자존심이 다치지 않을까 섬세하게 신경을 쓰려고 노력한 한 해이기도 했다.

상반기에는 재단의 일을, 하반기에는 연구원의 일을 주로 했다. 그 밖에 개인적으로 아는 이들의 일을 받아서 하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생일 전 날과 생일 날, 국군간호사관학교 촬영을 혼자 해낸 것이다. 그 때 신체적으로 굉장히 무리했지만 동시에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  몇 가지 일을 함에 있어서 계약내용보다 더 많은 일을 하기도 했다. 내가 보다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더라면 좀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건강] 

올 봄에는 수영을 한 달 가량 배웠고 가을부터는 요가원에 나가고 있다. 수영은 재밌었으나 한번 생긴 중이염으로 지금까지 고생을 하고 있다. 심각할 때는 양쪽 귀에 곰팡이가 피기도 했다. 탱고를 새로 시작한 이후로 왼쪽 발 바깥 쪽의 통증이 생겼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탠디에서 산 단화의 밑이 너무 딱딱했던 것-그 신발을 신은 채 무거운 장비를 들고 촬영현장을 40~50시간 뛰어다닌 것-이 원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방광염의 재발은 작년보다는 훨씬 덜했는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삶의 질이 굉장히 크게 개선됐다.  요가를 하며 틀어진 몸을 하나씩 잡고 있는데 속도는 더디지만 그래도 몸이 아주 조금씩 균형을 맞춰나가고 있는 듯 하다. 


[놀이] 


올해 들어 가장 잘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인문학 수업 같은 강의를 계속 들어보고 싶어 매주 한 번씩 탱고를 추러 나갔던 것이 인연이 돼 탱고를 다시 추게 됐다. 탱고는 플로어 안의 삶이고, 삶은 플로어 밖의 탱고라는 말이 있단다. 평소 내가 안고 있는 다양한 삶의 문제들은 탱고를 추면서 똑같은 문제로 나타났다. 비틀어진 몸과 약한 하체 힘, 춤을 출 때 나의 중심을 내가 갖고 있지 못해 비틀거리거나 상대방에게 의지하는 것, 무례한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것, 힘들고 불편한 상황이 지속되도 춤추기를 그만두지 못하고 끝까지 참고만 있는 것,  그 밖의 여러가지 문제들이 춤을 출 때 그대로 드러났다. 믿을만한 어른이 나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러한 모습들을 모니터링과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집 말고 도망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곳에서 춤을 추며 잠시나마 고민을 잊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탱고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춤을 계속 추고 싶다. 

 


[기타] 잘한 일과 화가 났던 몇 가지 사건 

<잘한 일>

수영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찔한 순간도 많았으나 그래도 지금까지는 나름 무사고 운전자다.

생애 네 번째 지리산 종주를 다녀왔다. 이번 종주는 종호, 정윤, 연일, 태민, 용호오빠와 그 동생이 함께했다. 체력적 한계를 심하게 느꼈고 함께 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뒤쳐졌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먹던 레몬에이드, 그리고 함께 시를 읽던 밤이 생각난다. 구름 가득했던 밤 하늘 사이로 잠깐 드러난 보름달의 모습, 새벽에 천왕봉을 오르며 본 별이 무수한 밤하늘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출발 전부터 무릎이 못버텨줄까봐 걱정을 했으나 생각보다는 잘 버텨줬고, 다만 종주가 끝날 무렵 등산화 밑창이 너덜너덜하게 뜯겨져 나갔다. 

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한 머리를 짧게 잘랐다. 4년 만에 단발머리가 됐다. 쉴 새 없이 머리카락을 만지고 상한 머리를 잡아 뜯는 못된 손버릇이 없어졌다. 되돌릴 수 없는 것들과는 미련없이 작별해야한다는 것을 배웠다.  

푸네스라는 독서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몇 권의 책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읽었다.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고자 꽤 많은 물건을 정리하고 처분했다. 덕분에 독립할 때 힘들지가 않았다. 

<화났던 일> 

전 집주인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올 여름에는 세탁기 고장으로 갈등이 있었다. 변경된 집주인은 나쁜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처가 아주 못된 사람이었다. 상식 밖의 요구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 내가 거절하자 정말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찍어 누르려고 했다. 또라이들이 또라이짓을 할 때 몇 배로 갚아줄 수 있는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1.12. 비공개 된 글을 공개로 전환하며 일부 이름을 '송'으로 변경하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구절이 있으나 그대로 놔둔다.)

'essence, existence > 1월 1일 '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년을 보내며  (0) 2020.12.26
2019년을 보내며  (0) 2020.01.14
2017년을 마무리하며  (0) 2018.01.01
2016년을 보내며  (0) 2016.12.19
2015년을 보내며  (0) 2016.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