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과 기록, 성찰과 결행(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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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분석을 돌이켜보며
집과 부모님을 생각하면 눈가가 글썽글썽해지는 친구들을 아주 오랫동안 부러워했다. 친구들과 달리 나에게 집과 부모란 그저 견디고 버텨야 하는 지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들어서면 엄마는 술에 잔뜩 취한 채 울다 잠이 들었거나 혹은 울며불며 소리를 지르며 집 안 집기들을 던지고 부수고 아버지와 가족들의 사진을 찢어 태우곤 했었다. 더 이상 부수고 태울 것이 없어졌을 때, 엄마는 아파트 고층 베란다에 난간 앞에 위태롭게 서서 하루종일 땅만 내려다 보았다. 그렇지 않은 날엔 그 어마어마한 분노가 고스란히 첫째 딸인 나에게로 향했다. 아빠와 닮았다는 이유로 엄마는 나를 미워했고, 아빠는 내가 당신의 원가족을 미워하는게 제 엄마를 꼭 닮았다며 나를 미워했다. 아주 오랫동안 참 많이 맞았..
2021.12.20 -
빗겨 서 있고 싶은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1. 오늘 분석에서는 예상 밖의 주제를 다루었다. 내가 평소 굉장히 다루기 어려워 하는 주제, '돈'. 중요한 화두가 새로 생겼다. 2. 이 꼭지는 윤리적 판단을 수반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내가 어떻게 판단하고 대처하는지 설명하고, 이번에 벌어지고있는 상황에 대한 내 입장을 간단히 적어놓은 것이다. 윤리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윤리 문제는 대체로 매우 상대적이고 입체적이기 때문이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는 것처럼, 각 행위자들은 저마다의 '정당한' 이유들을 모두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생선뼈를 발라내듯 제일 먼저 감정적인 요소를 최대한 제거하고 중요한 팩트를 추려낸다. 물론 '객관적'이라거나 '팩트'라는 말은 정치성이 다분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
2021.11.29 -
술자리에서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여럿 모여 갖는 떠들썩한 술자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어떻게서든 생길 수 밖에 없는 집단적인 분위기, 그 분위기를 맞추고 띄운다고 치켜 세워주는 일, 반대로 죽인다고 핀잔을 주는 일, 누군가의 잔이 비진 않았는지 살피고 잔을 채워주는 일, 잔을 비워주는 일, 그런 자리에서 오가는 어설픈 농담들과 웃기지도 않는데 웃어야 하는 일 등을 싫어했다. 개인 사업을 시작하고 '난 이제 조직 생활을 하던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겠구나'라고 생각한 이유 중에 하나도 이것이었다. 사장인 내가 단체로 우르르 몰려가 술을 마셔대는 회식을 싫어하니까 자연히 우리 사무실엔 술자리 회식이 없었다. 다 함께 하는 식사는 별 일이 없으면 점심시간이고, 설령 저녁에 먹게 되더라도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싶은 사..
2021.11.26 -
놀라워라!
지난 사랑을 잊지 못하고 힘들어 하던 내게 결혼을 하자며 조르던 이. 상당히 오랜기간 지속된 그 이의 열렬한 구애에 나는 냉담하게 굴었고 아주 이상한 핑계를 대며 그를 피했었다. 그러다가 연락이 끊겼었던 그 이가 올해 초 연락을 해왔었다. 내가 사는 집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커피 한 잔 마시자고. 평소 같았으면 단박에 거절을 했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에게 그간 나의 무례함에 대해 굉장히 사과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나있던 상태였다. 나쁜년이 되기 싫어서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며 은근슬쩍 그의 구애에 어깃장을 놓았던 나의 행동 때문에 천성이 여린 그 사람이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이란게 불 보듯 뻔했고(상대의 천성이 여리고 여리지 않고와 상관없이, 그냥 내 행동이 분명하지 못하고 비겁했으니 빼박 내 잘못) ..
2021.11.11 -
back to the zero point
1. 다시 분석이 시작된 이후로 분석 작업이 정체기에 들어섰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 주말의 분석은 아주 큰 망치가 되어, 쾅 하고 나를 내리쳤다. 스스로에게 비겁하지 않겠다는 실낱같은 목소리를 내 안에서 끄집어 냈을 때 얼마나 기뻐했었나. 그렇게 좋아하던 시간이 그리 오래 전의 일도 아닌데, 나는 그 때의 절박한 마음을 놓친 채로 살았다. 2. 조바심을 내지 말라고 했는데 왜 조바심을 내고 어쩔 줄 몰라하냐는 분석가의 말이, 싸늘하고 냉담한 호통처럼 들렸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쉬이 가라앉지 않는 마음들이 있는데 요즘의 나에게는 조바심과 공허함이 그렇다. 조절할 수 없는 마음이 올라와 눈물이 날 것 같은 날일수록,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점검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한다. 마..
2021.11.09 -
이런저런 생각
1. 오랜만에 태성과 점심을 먹었다. 대학 시절 태성과 선욱과 책 모임을 핑계로 만나 그렇게 술만 죽어라 마셔대던 거리를 걷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나는 정반대의 성향을 갖고 있는 태성과 선욱 사이에서, 때로는 태성의 영향을 때로는 선욱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20대를 걸어나왔다. 일에 대한 것만 봐도 사회초년생 때는 선욱과, 사업을 시작하고선 상당 기간 태성과 함께 일을 했었다. 이제 태성은 태성의 길을, 선욱은 선욱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간다. 때론 가깝게 때론 멀리 지내며 영향을 주고 받아왔던 사람들로부터 나는 또 멀어져 나와 나의 길을 더듬더듬 찾아 나서고 있다. 각자는 어떤 삶을 걸어나갈까. 그 끝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2. '너는 정말 아니다'고 판단해 차단한 사람들이 이렇게든 저렇게든 ..
2021.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