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과 기록, 성찰과 결행(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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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한 남자
처음 그 분을 봤을 때 유난히 시선이 확 갔었다. 이렇게까지 청정한 기운을 가진 남자라니! 그것도 30대에? 그를 볼 때면 마치 멸종위기종을 보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보기 드문 유형의 사람-특히 이 시대에-이 나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뭐랄까, 그저 고맙고 뭉클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소중하게 잘 보호하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는 알면 알수록 '맑은', 그러니까 시쳇말로 무해한 사람이었다. 그의 다정하고 순한 성품은 큰 키와 우람한 덩치와 대비돼 더 두드러졌다. 심지어 그는 알면 알수록 유쾌한 사람이었다. 나는 확신했다. '이건 진짜 멸종위기종이다. 가깝게 지내야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성품에 대해 당혹스러움과 회의감을 느끼는 몇 가지 사건이 터지며 나는..
2022.01.08 -
지켜보는 일, 지키는 일
예전보다야 빈도가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과거의 상처에 걸려 넘어지는 날들이 있다. 겉으로야 애써 의연한 척, 무던한 척 견디지만 사실 그럴 때마다 마음 속의 '어린 나'는 불편한 상황을 피해 황급히 도망을 가버린다. 그런 날에는 가만히 누워 내 마음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며 사라져버린 어린 나를 찾는다. 대체로 어린 나는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나 방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고개를 파묻고 우는 상태로, 성인인 '나'에 의해 '발견 된다'. 30대의 나는 어린 내 곁을 조용히 지키며 불안이 잦아드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리고는 여러 번에 걸쳐 나지막히 일러준다. "괜찮아, 내가 곁에서 지킬거야. 너는 약하지 않고 혼자도 아냐. 아무도 너를 해칠 수 없어." 타인(특히 부모님)이 나의 상처를 발..
2022.01.03 -
직접 만든 새해 엽서를 띄웠다.
새해에 그립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직접 만든 엽서를 띄웠다. 엽서 앞 장에는 받는 이를 그렸는데 반응이 꽤 좋았다. 그런데 딱 한 명, 현영이에게 보내는 엽서에는 고성의 바닷가 풍경을 그렸다. 사진에는 미처 담을 수 없어 마음에 아로새겨 놓았던 푸른 동해 바다의 일출과 밤 바다 위에 뜬 하얀 보름달. 현영이 말처럼 서로 나란히 앉아 고요히 어두운 바닷가를 바라보던 밤 풍경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2022.01.03 -
2021년, 30~32살이었던 우리는 어떤 음악을 들었나
2021년 작년 한 해 동안 내 또래 친구들은 어떤 음악을 가장 좋아했을까? 혹은 가장 많이 들은 곡은 무엇이었을까? 왜 그랬을까? 나와 한 살 터울인 30~32살 친구들 중에서도 특히 서로 다른 성향과 가치관, 전공, 직업, 사회적 배경을 가진 10명에게 질문해보았다. 어떤 친구들은 특별히 고민하지 않고 문자를 보자마자 답을 주었고 어떤 친구들은 답을 하기까지 며칠이 걸렸다. 어떤 친구는 왜 그 곡을 선택했는가에 대한 이유 따위는 시원하게 무시해버렸고, 어떤 친구는 아예 글 한 편을 적어 보내는 등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자, 이제 나와 10명의 친구들과 2021년을 함께 해준 고마운 음악들을 소개한다. 이 질문 하나로 몇몇 친구들과는 오랜만에 대화의 물꼬가 터지기도 했다. 그것도 성과라면 성과지만, 친..
2022.01.01 -
깔끔한 태도
1. 일을 하는데 끊임없이 친분이나 감정을 섞는 사람들을 멀리한다. 일터 바깥에서야 얼마든지 친분을 쌓든 개인적인 정을 나누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냐만, 일터 안으로 친분과 감정을 끌어 들일 경우에는 그 의도가 아무리 선하더라도 여러 문제를 낳는다. 무능을 감추고 균형을 잃게 하고 사리판단을 흐리고 요상한 권력과 정치꾼을 만들어 내 결국 부패의 온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2. 그런 이유로 사람이든 일이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깔끔하게 대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문제는 그런 양반들이 조직 안에 있으면 고립되거나 마이너한 세력으로만 남는 경우가 많아 참 안타깝다는 점이다. 3. 얼마 전에 안면을 튼 이가 딱 그런 케이스다. 인정(人情)은 있으나 일을 함에 있어 인간적 감정을 분리해낼 수 있는 사람. 하지만 ..
2021.12.30 -
상실을 마주하는 새벽
그리워하는 선생님께서 남긴 고별 인사를 읽었다. 선생님의 마지막 인사 '여러분 안녕히...'를 앞에 두고 하염없이 울었다. 작별의 순간은 아무리 해도 실로 익숙해지지 않는다. 3년 전 이맘 때 쯤 헤어짐을 고한 옛 연인 조차 제대로 떠나보내지 못해 헤매고 있는데 떠나보내야 할 사람들과 시간들은 계속 늘어나기만 한다. 그 날 밤 꿈 속에선 그리운 사람이 나와 자기와 다시 잘해볼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백번도 천번도'라는 말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것을 애써 누른 채로 평정심을 되찾으려 했다. 나와 진정으로 잘 해볼 마음이 있는걸까, 아니면 혹시 오랫동안 자기를 잊지 못하고 헤매는 나에게 연민이나 죄책감을 느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그에게 진실로 관계를 ..
2021.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