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과 기록, 성찰과 결행/지난 이야기(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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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워라!
지난 사랑을 잊지 못하고 힘들어 하던 내게 결혼을 하자며 조르던 이. 상당히 오랜기간 지속된 그 이의 열렬한 구애에 나는 냉담하게 굴었고 아주 이상한 핑계를 대며 그를 피했었다. 그러다가 연락이 끊겼었던 그 이가 올해 초 연락을 해왔었다. 내가 사는 집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커피 한 잔 마시자고. 평소 같았으면 단박에 거절을 했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에게 그간 나의 무례함에 대해 굉장히 사과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나있던 상태였다. 나쁜년이 되기 싫어서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며 은근슬쩍 그의 구애에 어깃장을 놓았던 나의 행동 때문에 천성이 여린 그 사람이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이란게 불 보듯 뻔했고(상대의 천성이 여리고 여리지 않고와 상관없이, 그냥 내 행동이 분명하지 못하고 비겁했으니 빼박 내 잘못) ..
2021.11.11 -
back to the zero point
1. 다시 분석이 시작된 이후로 분석 작업이 정체기에 들어섰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 주말의 분석은 아주 큰 망치가 되어, 쾅 하고 나를 내리쳤다. 스스로에게 비겁하지 않겠다는 실낱같은 목소리를 내 안에서 끄집어 냈을 때 얼마나 기뻐했었나. 그렇게 좋아하던 시간이 그리 오래 전의 일도 아닌데, 나는 그 때의 절박한 마음을 놓친 채로 살았다. 2. 조바심을 내지 말라고 했는데 왜 조바심을 내고 어쩔 줄 몰라하냐는 분석가의 말이, 싸늘하고 냉담한 호통처럼 들렸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쉬이 가라앉지 않는 마음들이 있는데 요즘의 나에게는 조바심과 공허함이 그렇다. 조절할 수 없는 마음이 올라와 눈물이 날 것 같은 날일수록,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점검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한다. 마..
2021.11.09 -
이런저런 생각
1. 오랜만에 태성과 점심을 먹었다. 대학 시절 태성과 선욱과 책 모임을 핑계로 만나 그렇게 술만 죽어라 마셔대던 거리를 걷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나는 정반대의 성향을 갖고 있는 태성과 선욱 사이에서, 때로는 태성의 영향을 때로는 선욱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20대를 걸어나왔다. 일에 대한 것만 봐도 사회초년생 때는 선욱과, 사업을 시작하고선 상당 기간 태성과 함께 일을 했었다. 이제 태성은 태성의 길을, 선욱은 선욱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간다. 때론 가깝게 때론 멀리 지내며 영향을 주고 받아왔던 사람들로부터 나는 또 멀어져 나와 나의 길을 더듬더듬 찾아 나서고 있다. 각자는 어떤 삶을 걸어나갈까. 그 끝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2. '너는 정말 아니다'고 판단해 차단한 사람들이 이렇게든 저렇게든 ..
2021.10.15 -
참으로 오랜만의 카이스트
오랜만에 어은동에 갈 일이 있어 이라와 점심을 먹고 카이스트에 다녀왔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추억이 많은 장소. 예쁘지만 성격 있는 거위들은 역시 변함 없이 그 자리에 있다. 작년 이 맘 때에는 이라와 정신분석, 불교, 명상, 여행, 서로의 꿈에 대해 수다를 떨었는데 올해는 이라의 남자친구, 신경증과 도착증, 결혼과 가족, 취미와 유희, 건강에 대한 이야기로 반나절이 꽉 찼다. 정말 애정하는 우리 이라, 아픈 곳 어서 나아 건강해지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2021.10.04 -
매듭
넌 너무 이기적고 나 아니면 널 받아줄 사람 없다. 그것이 끝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난 뒤, 옷장 안으로 기어 들어가 식음전폐하고 며칠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몇 주 뒤에 그는 헤어지겠다고 문자로 통보하였다. 용규 결혼식이 끝나고 나오던 길이었다. 차 뒷자석에 타고 있던 친구들에게 자조하며 그 소식을 전하자 갑자기 숙연해졌었던 기억이 난다.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말을 외면하기 위해 두껍게 쌓았던 환상의 장막들을 걷어내고 있다. 직접 나의 입으로 또박또박 말해 본다. (너 나하고 결혼할 생각이 있어?) 나 아니면 널 받아줄 사람 없는데 어쩌겠어. 마치 가슴 속 한 복판에 드라이 아이스를 던져 놓은 것처럼, 시리고 차가운 기운에 몸도 마음도 꽝꽝 얼어 붙는다. 내가 이 때의 이야기를 꺼내자 분석가가 ..
2021.10.03 -
오랜만에 쉬는 날
오랜만에 쉬는 날이었다. 산에는 가지 못했지만 대신 밀린 잠을 잤고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었으며 미처 다 읽지 못했던 책을 마저 읽고 영화를 한 편 보았다. 엄마가 올해 마지막 복숭아라고 사온 황도도 많이 먹었다. 겨우 하루 빈둥댔다고 벌벌 떠는건 우스꽝스러운 것 같아 아무 생각 없이 보냈다. 다음에는 산을 가거나 공부를 하거나 춤을 추거나 산책을 하거나 요가나 수영을 해야지. 확실히 나는 머리가 아니라 몸을 쓸 때 재충전이 되는 사람이다. 지난 달 영감을 많이 받았던 춤 영상 두개. 확실히 요즘은 자유분방하거나 위트있는 것들이 좋고 눈에 확 띈다. Salif Gueye의 영상 중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업로드 된 저 shorts가 가장 좋았고 Isaiah Shinn이 연출하는 댄스 영상 중에서는 여전히 A..
2021.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