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25. 00:03ㆍ당분간 머무를 이야기
큰이모부가 큰 이모와 연애하던 시절, 공부를 더 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던 이모부의 사연을 들은 외할아버지가 돈을 빌려주셨다고 한다. "자네가 내 딸과 결혼을 할지 안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학비를 빌려주고 싶네. 다만 언제가 될지라도 추후 이 돈을 갚을 여력이 되면 꼭 갚게나." 그 때의 사건은 이모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되었다고 한다. 너무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고학을 해야 했던 할아버지는 주변의 고학생들을 보면 늘 조용히 도움을 주셨고, 손주들 역시 학비 걱정 없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주셨다.
어제 엄마에게서 들은 그 이야기가 잠시 떠올라 곱씹어보다가, 문득 내가 커오는 동안 돈 걱정 없이 맘 편히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부분 할아버지의 생애에 빚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할아버지가 평생동안 아끼며 힘겹게 모은 돈으로 쉽고 게으르게 공부했다. 그 돈은 정말 공부를 하고 싶었던 한 남자의 아쉬움과 한이 깃든 처절한 돈이었지만, 아주 오랫동안 나는 오히려 할아버지를 구두쇠같이 돈 욕심만 내는 늙은이라고 생각했었다. 돈을 꽉 쥐고 단 한 푼도 쓰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던 시간들이 길었다. 할아버지가 떠나신 뒤에서야 많은 것들이 새로 보인다.
할아버지, 저희 얼마나 예뻐해주셨는지 이제서야 알았어요. 너무 늦게 알아서 죄송해요. 감사합니다. 저 할아버지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살게요.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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