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10. 07:24ㆍ당분간 머무를 이야기
1. 참담했다. 부모님 역시 황망함, 분노, 애통함, 참담함 사이를 끊임없이 왕복운동 하셨다.
2. 내 주변의 2030 친구들 중에는 안철수를 찍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저마다가 밝힌 이유는 조금씩 달랐지만, 결국 모두 이와 윤이 끔찍히 싫어서 그나마 '결정타'가 없는 안에게 표를 주겠다고 했다. 그들은 이와 윤의 양자 대결구도를 똥맛카레와 카레맛똥의 대결로 받아들였다. 안이 '철수'를 결정한 뒤 그들의 표심은 뿔뿔히 흩어졌다. 누군가는 똥맛카레와 카레맛똥 중에 한 가지를 울며 겨자먹기로 골랐고, 또 누군가는 제3지대의 후보에게 투표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기권을 해버렸다. 나는 그런 판단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들이 어떤 말을 하고 싶어하는 지는 알 것 같았다.
3. 이번 대선 결과는 윤이 대통령로서 자질과 역량이 있어 선출된 것이 아니라 '현 정권심판' 및 이재명에 대한 반감이 빚어낸 것이라고 본다. 심지어 '국민 머리 위에 있는 똑똑한 사기꾼보다는 무능한 식물 대통령이 낫다'며 그를 뽑았다는 사람들도 여럿 있지 않나. 그가 견고한 지지기반 위에서 당선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약 취임 이후 대통령으로서의 자질 검증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그를 향한 오늘의 지지 역시 손쉽게 내일의 공격으로 태세를 바꿀 공산이 크다. 뿐만 아니라 임기가 2년 남은 180석의 거대 야당, 꼬리표처럼 따라 다닐 본인과 가족 리스크, 지지세력만큼이나 견고한 반대세력(1%에도 못 미치는 표 차이는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윤과 마찬가지로, 이가 받은 표 역시 후보 이재명에 대한 신뢰에서 기인했다기 보다는 후보 윤석열을 막기 위한 결집의 대가였다고 본다. 자신을 극혐하는 반대세력을 어떻게 설득해낼 것인가? 분명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약한 당내 장악력 등 풀기 어려운 숙제들이 산적해 있다.
아차, 그리고 한 가지 더. 혐오와 갈라치기로 지지를 얻은 자, 그것으로 망할 것이다.
4. 이가 1%도 안되는 표로 졌다고 심을 탓하는 일부 이의 지지자가 있는데 번지 수를 잘못 찾은 비난이라고 본다. 우선 민주당과 정의당의 지향과 색깔은 매우 다르고, 정의당에 한 표를 행사할 유권자들은 민주당 역시 철폐해야 할 보수화된 기성권력으로 받아들일 공산이 크며, 만약 심이 사퇴했다면 그 표의 많은 수가 이에게 갔을 것이라는 추측, 그리고 '대의'를 위해 정의당이 기꺼이 사사로운 이익을 포기하고 단일화에 임했어야 한다는 생각은 모두 자기중심적이라고 본다. 심의 표는 심의 표이지 이의 표가 아니다. 정의당의 표는 정의당의 표이지, 민주당의 표가 아니다. 그걸 헷갈리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5. 문제는 심이 아니라 민주당 그 자체에서 찾아야 더 건설적인 활로를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 오랜 시간 민주당을 지지해왔던 2030 지인들 중에 윤이나 안에게 표를 던진 이들이 많다. (선제적으로 밝히자면 나는 윤에게 투표한 사람들의 선택을 존중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개인적으론 실망을 금치 못하겠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윤에게 왜 투표를 했을까. 그들이 밝힌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대부분은 말 그대로 '정권심판'이다. 국민들이 거대 야당을 만들어 주었음에도 정치 개혁에 미온적이며 자기의 잇속 챙기기에만 급급한 '무능'한 민주당을 심판하기 위해, 국민적 동의 없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을 추진한 것에 대한 분노, '퇴임 이후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개인적으로 나는 이 논리에 동의할 수가 없다.)같은 것들이란 말이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할 것인가? 현재 심과 정의당으로 향해있는 분노가 정말로 향해야 하는 곳은 어디어야만 하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민주당 현직 의원들은 얼마나 절박하게 내 일처럼 이번 선거에 임했나?
6. 건설적이고 진취적인 제3세력이 크는 것을 바란다. 하지만 이번 대선 내내 지금의 정의당(특히 심이 중심이 되는 체제 속에서는)의 미래가 어두워 보여 심란했다. 우선 정의당만의 아젠다가 보이질 않았다. 주4일제 같은 정책들 역시도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왜그런걸까? 그리고 여담으로 개인적으론 심이 욕심을 부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김조년 교수님 말씀처럼, 심이 본인이 아닌 젊은 후배 정치인을 등판시켰으면 어땠을까. 어짜피 압도적인 표를 가져올 수 없는 선거라면 국민들 앞에서 차세대 젊은 정치인을 눈도장을 찍는 기회로 만들었으면?
('22년 9월 덧붙임. 미완성된 글이지만 우선 공개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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