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15. 18:15ㆍ관찰과 기록, 성찰과 결행/지난 이야기
밤새 옷장 안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던 옷을 정리했다.
15년을 넘게 나와 함께 했던 낡고 헤지고 오만데 구멍난 티셔츠들과 닳고 닳은 옷을 버리고, 자주 입어서 밑단이 터졌거나 단추가 떨어졌거나 보풀이 생겨 손길이 필요했던 옷들은 정성스럽게 손질했다. 사놓고 한번도 입지 않았거나 한 두번 잠깐 입었던 새옷들은 손빨래하고 빳빳하게 다림질해서 기증하기 위한 몸단장을 시켰다. 스팀 다림질을 하면서 돈이 아깝다는 마음도 들고, 옷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내가 후생에 사람이 아니라 옷으로 태어나서 나같은 주인을 만난다면 참 서운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옷에게 중얼댄다. 이제는 나보다 너를 더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가서 네가 얼마나 쓸모있는지 마음껏 증명했으면 좋겠다고.
자신이 쓸모가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 사람들이 굉장한 무기력감과 절망감에 빠지는 것처럼, 모든 재화 역시 제 나름의 역할과 기능이 없어지는 순간 쓰레기가 되고 짐이 된다. 과유불급. 그렇게 짐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물건에 대한 통제력은 떨어지게 된다. 불분명한 필요에 의해서 새로 샀던 옷이 옷더미 속에 파묻혀 주인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그렇게 한 계절이 휙 지나가버려서 일 년을 고스란히 옷장에서 묵으면, 신상 꼬까옷들에게 밀리는건 한 순간이다. 옷이 아니라 짐으로 꽉 찬 옷장은 그렇게 완성된다.
물건에 대한 통제력은 사실 삶에 대한 통제력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사람의 집중력이나 주의력이라는건 한정돼 있는데, 그 귀한 인간의 자원을 삶의 본질에 다가서는데 쓰는게 아니라 아닌 여기저기 쌓인 짐들에게 뺏겨버리는건 단언컨대 엄청난 인생의 낭비다. 그래서 '물건이 관리가 안된다'라거나 '쓸데 없이 많은 물건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에 집중을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지체없이 정리를 시작해야한다. 인생에 쓸데없는 것을 버리고 본질에 집중하기 위해서. 내 삶에 대한 통제권을 회복하기 위해서.
아래의 몇 가지 목록은 이번에 옷장정리하면서 만든 가이드라인.
1. 보세옷은 절대 사지 않는다.
2. 옷은 꼭 입어보고 하루정도 고민을 여유시간을 두고 구입을 결정한다.
3. 돈을 더 주더라도 제대로 된 옷 한 벌과 약간 엉성하지만 저렴한 옷 두 벌 중에 전자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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