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용품점

2010. 12. 21. 01:48관찰과 기록, 성찰과 결행/지난 이야기

우리 집이 유흥가를 바로 끼고 있어서 나는 성인용품점을 코 앞에서 보면서 자랐다. 
그러나 아직까지 직접 들어가본 적은 한번도 없다. 

대체적으로 성인용품점은 주기가 짧은 모양이다. 일 년을 넘기는 걸 본 적이 없다. 

성인용품점이 망한 자리에는 식당과 옷가게가 차례로 들어 섰다. 

옷가게가 문을 닫고 난 뒤에는 다시 성인용품점이 섰고, 언제부터인가는 식당이 다시 들어섰다.
 
어떤 성인용품점이든 외관은 불투명한 분홍 시트지가 발라져 있고 'Love'라는 단어는 꼭 써있다. 

이 두가지 조건은 성인용품의 필수인 모양이다.

가끔 파란색이 섞인 보라색인지 분홍색인지 정체성이 헷갈리는 외관등이 켜져있는 집도 있다.

가끔 네온사인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집도 있었는데, 이런 장식은 오래 가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이 네온사인을 뜯어다가  우리 집 바로 옆에 있었던 고물상에 팔아 넘겼기 때문일거다.

내부는 절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상점 안에 사람이 있는지, 영업을 하고 있는지 확인 하기 위해서는 직접 문을 열어보거나 "open"이라는 판넬이 걸려 있어야 한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성인용품점 주인일지가 나에겐 최대 관심사였는데,
내 상상에 의하면 
세 가지 가정이 가장 유력하다는걸로 결론지었다.

첫 번째는 소위 말하는 깍두기 아저씨다. 금목걸이를 걸었을지도 모른다. 

얼굴은 커다랗고 상처가 많이 났을 것 같고 짧은 스포츠 머리일 것같다. 

아이들이 귀찮게 굴거나 또는 가게에서 아무 것도 사지 않은 채로 아이쇼핑만 하다가 그냥 나가는 손님을 

가장 싫어할 것 같다. 험악한 표정으로 은어를 섞어쓰면서 욕을 툭툭 해댈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아예 빼빼마르고 병약해보이는 아저씨다. 얼굴은 검푸르게 떠있고 빼빼 마른채로 안경을 쓰고 있을 것 같다. 티셔츠나 촌스러운 스트라이프 남방을 입었을 확률이 큰데, 하도 빼빼 말라서 옷이 헐렁거릴 것 같다. 

웃어도 침울해보일 것 같다.

세 번째는 아줌마다. 생존력이 강하거나 마담뚜같은 아줌마는 아닐 것 같다. 

손님이 오면 졸린 눈을 비비며 나와서 피곤하게 '다 고르셨어요?' '이만사천원입니다'라고 대답할 것만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집시같은 아주 긴 치마를 입고 있을 것 같고 머리는 굵은 파마끼가 살짝 남은 단발이 아닐까 싶다.

하여간 아빠와 엄마랑 갈치를 먹으러 가는 길에, 내가 성인용품점 이야기를 꺼냈다.
도대체 뭘 파는 곳이냐, 어떤 사람들이 운영하느냐 등 여러가지를 물어봤는데
우리 엄마 아빠도 성인용품점에 대해 아는게 하나도 아시는게 없는 것 같다. 

엄마는 킥킥 거리면서 아마 야한 비디오나 잡지와 다양한 것들을 팔거라고 했다.

 아빠는 내 질문을 아예 아빠식으로 해석해서 오히려 나에게 성인용품점에 출입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냐고 물으셨다. 

생각해보니, 가게를 이용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아빠가 말하셨다. 

"그런데도 가게가 운영될 수 있는 까닭이 뭐겠냐. 폭리때문이야."
아빠적인 대답이었다. (아빠랑 이야기를 할 때마다 괜히 더 어른이 된 것 같다.)

나중에 친한 친구랑(예를 들면 진명이) 직접 가봐야겠다는 말을 하니까, 

엄마가 제발 여자랑은 가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하여간 재밌을 것 같다. 이제 나도 어른인가보다. 



(*이 글은 내가 막 스무살이 됐을 무렵 썼던 글이며, 우연히 이 글을 발견해 14년 12월에 이 곳으로 글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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