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15. 12:50ㆍ관찰과 기록, 성찰과 결행/지난 이야기
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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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에 관해
나의 비결, 그것은 '분노할 일에 분노하는 것'이죠. 그리고 또 하나의 비결은 '기쁨'입니다. 인간의 핵심을 이루는 것중 하나가 분노입니다. 분노할 일에 분노하기를 결코 단념하지 않는 사랑이라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지킬 수 있으며,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습니다. 따로 또 같이, 정의롭지 못한 일이 자행되는 곳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해하려 애쓰는 것은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 "나 나름으로 어떻게 문제해결에 참여할 것인가" 이 참여가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맞다. 분노의 이유가 오늘 날에는 예전보다 덜 확실해 보일 수도 있다. 아니면 세상이 너무 복잡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누가 명령하며 누가 결정하는가? 우리를 지배하는 모든 흐름들을 샅샅이 구분한다는 것이 늘 쉬운 일만은 아니다. (중략) 우리의 상대는 광활한 세계이며 그 세계가 상호의존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절감하고 있다.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더욱 더 강력한 상호연결성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도 참아낼 수 없는 일들은 있다. 그것이 무슨 일인지 알려면 제대로 들여다보고 제대로 찾아야한다.
폭력에 관해
당연히 테러리즘은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이 지닌 무기와 비교도 안 될만큼 우월한 무력적 방법에 의해 점령당한 쪽의 입장에서 보면 민중의 반응이 꼭 비폭력적일 수만은 없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로켓포를 발사하는 행동은 포를 쏜 쪽의 대의명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자지구 주민들의 이런 몸짓을 보고 결분에 의한 행동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다. 분노가 끓어넘치는 상태를 격분이라고 한다면 폭력이란 도저히 용납 못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내린 유감스러운 결론이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를 이해한다면 테러리즘이 격분을 표출하는 한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 격분은 부정적 표현이다. 도에 넘치게 분노해서는 안되며, 어쨌든 희망을 가져야 한다. 격분이란 희망을 부정하는 행위다. 격분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고 당연한 일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납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희망이 긍정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경우에 격분 탓으로 그것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폭력에 관해
나는 호소합니다. 우리의 정신을 완전히 개혁하자고, 폭력은 거부해야합니다. 우선 효과가 없기 때문에 그래야 합니다. 폭력 행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증오만이 더욱 깊이 뿌리내리며 복수심이 더욱 불타오를 뿐입니다. 폭력은 폭력의 악순환을 더욱 심화시키고 미래와 희망으로 향한 문을 닫아버립니다. 그래서 책에서도 썼듯이 혹시 폭력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희망 뿐입니다. 이 책에 제가 좋아하는 시인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했지요. '희망은 어찌 이리 격렬한가'라고.
하지만 꼭 알아두십시오. 비폴력이란 손 놓고 팔짱 끼고, 속수무책으로 따귀 때리는 자에게 뺨이나 내밀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비폭력이란 우선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 일, 그다음에 타인들의 폭력성향을 정복하는 일입니다. 참 어려운 구축 작업입니다.
무관심, 중도와 중립에 관해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밖에, 이런 식으로 말하는 태도다. 이렇게 행동하면 당신들은 인갈을 이루는 기본 요소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다.
어떤 이는 중용과 중도를 조언한다. 자신의 사유와 행동을 성찰하고 반대편과 소통하고 그 입장을 존중하고 공유점을 확보하는 것은 진리점을 찾아가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사람의 삶과 직결되는 가치와 정책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기계적 중립은 없다. 존F.케네디 역시 단체의 신곡을 재해석하며 말한다. "지옥의 가장 뜨거은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돼 이싿." 현실에 대한 냉소, 무관심, 거리두기만으로는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의 정당한 분노와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여 세상 바꾸기에 나서자.
계발해야하는 가치에 관해
삶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남에게 베풀고 싶은 마음과 베푸는 기쁨을, 남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책임을 감수하는 것, 어떤 경우에도 남에게 베풀고 싶다는 마음, 이 마음을 북돋아야 합니다. 사람을 책임 있는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그 마음이기 떄문입니다. 우리의 지성과 감성을 키워주는 것이 바로 그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끊임없이 교육을 통해 계발해야 하며, 마음 교육을 위해서는 상상력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정신이 이성 쪽에 더 잘 반응한다면, 마음은 상상력이 발취될 때 더 잘 반응합니다. 마음과 정신 양쪽을 다 계발하려면 평소에 시를 암송하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희망에 관해
끔찍한 지금의 세계가 기나긴 역사의 발전 속에서 보면 그저 한 순간일 뿐인 이유를, 숱한 혁명과 봉기를 이끈 주도적 힘의 하나는 언제나 희망이었음을, 내가 미래를 생각하면서 여전히 그래도 미래는 희망이라고 보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노력해야한다. (사르트르)
현대의 여러 사회들이 서로 이해하고 끊임없이 인내한다면 충분히 갈등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희망의 메세지인 것이다.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권을 발판으로 삼아야 하며 인권을 침해하는 주체는 누구를 막론하고 우리의 분노를 촉발해 마땅하다. 인간의 권리에 대해서만큼은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짧은 서평
그의 생애 그리고 그가 세상을 마주하는 태도는 경이로울 정도로 강건하고 용감하며 애정이 가득하다. 자유·평등·박애라는 가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애를 불태운 이가 노래하는 분노와 희망은 어떤 것보다 묵직한 깊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젊은 이가 노래하는 것보다도 밝고 힘차다. 존경이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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