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29. 01:42ㆍessence, existence/특별히 기억하고 싶은 순간
이번 라이프 사진전은 그 많은 사진 중에서 총 101장을 추려 진행된 전시였다.
<라이프>의 창간 이래 역사적으로 굵직한 획을 그었던 다양한 사건과 사람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경험인만큼, 관람을 하는데 상당한 집중력과 힘이 요구됐다. 특히 일요일 점심시간에 입장을 해서(...) 쏟아져 들어오는 인파 속에 떠밀리며 관람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더더욱 그러했다. 입을 헹궈가며 와인을 마시듯, 각 섹션마다 가급적이면 머리 속을 비워내고 '맨 눈', '맨 마음'으로 전시를 보려고 했지만 썩 잘 되지는 않았고 결국 중간부터는 사진을 보는 일이 벅차게 느껴졌다. 그럴 수록 속도를 늦추며 좀 더 사진 앞에 진득하게 머물러 보려고 노력했다.
카메라로 밥 먹고 사는 나에게는 여러가지로 굉장히 유익한 공부였다.
첫째, 커다란 프린팅으로 보는 사진은 사진집으로 보는 사진과는 완전히 다른 무엇이었다. 특히 사진이 내뿜는 존재감은 감히 비교불가.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와 노트북이나 휴대폰으로 보는 영화를 같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선상에 있는 것일테지. 얼마 전 빔 벤더스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그 이가 "휴대전화로 촬영한 사진은 사진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밝힌 대목에서 "과연 그러한가"라는 질문이 들었는데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들 대부분은 인화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편집과 인화의 과정은 포토그라피의 에센스를 형성하는 중요한 과정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 각각의 포토그래퍼가 갖고 있는 철학과 개성, 사진에 대한 접근과 고민 그리고 다양한 시도들을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본질적 고민과 맞닿아 있는 것이어서, 나는 사진 너머의 포토그래퍼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끊임없이 내가 던진 질문들을 역으로 되돌려 받았다.
"to see life; to see the world, to eyewitness great events; to watch the faces of the poor and the gestures of the proud; to see strange things-- machines, armies, multitudes, shadows in the jungle and on the moon; to see man's work-- his paintings, towers and discoveries; to see things thousands of miles away, things hidden behind walls and within rooms,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women that men love and many children; to see and take pleasure in seeing; to see and be amazed; to see and be instructed... To see, and be shown is now the will and new expectancy of half mankind."
Henry Luce, LIFE magazine creator
인생을 보기 위하여, 세계를 보기 위하여, 대 사건의 증인이 되고 가만한 자와 거만한 자의 움직임을 관찰하자. 기이한 물건들, 기계, 군대, 집단, 정글과 달에 걸린 그림자를 보자. 수천 킬로 미터씩 떨어진 먼 곳의 일들, 벽 뒤에 방 속에 숨겨진 일들, 위험해질 일들, 사랑받는 사람들, 또 수많은 어린이들을 보자. 보고, 보는 것을 즐거워하자. 보고 또 놀라자. 보고 또 배우자.
헨리 루스(1898~1967) <타임>, <포춘>, <라이프> 잡지의 창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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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t Robert Frost Standing in Oxford Field with His Hand over His Face (Howard Sochurek)
더 가까이: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은건 충분히 다가가지 않아서다" (로버트 카파) -중략- 하지만 충분히 다가선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서 가깝게 다가선 전투의 모습일까? 아니면 최고의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서 그의 시가를 뺏어갈 수 있는 용기일까? 혹은 야생동물로부터 인간적인 모습을 끌어낼 수 있는 재주일까? 무엇이 되었든 충분하다는 표현은 모호하고 상대적인 것이다.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셔터를 누르는 것보다 사람들이 어울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알프레드 아이젠슈테트) -중략- 그가 추구한 자연스러운 빛을 활용한 솔직한 사진의 핵심은 인물과 사건이 스스로 이야기하게끔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 진정성을 얻기 위해 그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사건 속으로 들어가 자연스럽게 그 일부가 되었다. 누군가의 생김새만 아는 것과 그의 목소리, 더 나아가 그의 생각과 그를 둘러싼 시간과 환경을 알아가조가 하는 노력은 이야기가 담긴 순간을 찾아내는 데 큰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몰입하기: 카메라는 단순히 순간을 기록하는 기계 장치처럼 보이지만 그 기록은 순간을 사실 그 자체로만 동결한 것은 아니다. 사진은 사건과 인물을 현실에서 분리하여 독립적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사진가의 태도와 의지 또한 투영된다. 그 중 몇 몇 사진은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대변하는 시대의 아이콘이 되기도 하고, 유명한 제목이 덧붙여지기도 한다. 우연으로 얻어진 것 같은 이런 영광의 실상은 오랜 시간 동안 외로운 기다림 끝에 얻은 결과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쟁: "우리는 이 두 개의 전쟁에서 취재한 사진을 무시하거나 없애버릴 수 없었다. 그것들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서 편집자의 방침이나 독자의 결백성보다 무거운 권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그 사진들을 제한된 지면에 보다 사실에 가깝게 보일 수 있도록 선택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 사건 자체는 결코 아름다운 것이 못된다. 중요한 것은 전쟁이 일어날 때 사물이나 인간들이 파괴되고 죽는다는 사실이다. 가장 뛰어난 사진도 전쟁이 만들어내는 무서움과 추악함을 모두 표현할 수 없다. 피, 육체, 폭력, 파괴의 일부는 보여줄 수 있지만 인간을 죽이겠다는 의지, 아니 그것보다는 어떻게 하든지 살아남아야겠다는 격렬한 의지, 길고 외로운 아픔, 전쟁을 통해서 흐르고 있는 인간의 비통한 감정 같은 것은 기록될 수 없다. 어떤 뛰어난 전쟁 사진도 병사들이 질러대는 고통과 죽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염원했던 생의 의지를 전할 수는 없다. 하지만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은 전쟁의 공포를 딛고 선 것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또 아무런 힘도 되지 못한다. 그것을 알아야만 전쟁이 없을 때의 사회적인 이익과 인간이 누리는 행복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또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의 모습과 그 이유를 보지 않으려고 한다면 죽은 사람은 죽었어도 결코 죽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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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949, these two children of circus performers watched Miss Lola practice on a tightrope while an acrobat (on his back) balanced a contraption on his feet. (Nina L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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