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제주여행기 #1. 바라나시 책골목

2021. 6. 18. 11:56essence, existence/특별히 기억하고 싶은 순간

올 겨울 근 일주일 동안 제주에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길을 함께 한 친구가 "제주에서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지" 물었을 때, 나는 한라산 등산과 책방(특히 바라나시 책골목) 투어, 쉼이라고 대답했다. 그런 나의 바람은 아주 빠르게 이루어졌다. 왜냐면 비행기에서 내린 뒤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용담동에 위치한 작은 책방이었기 때문이다.  

 

'바라나시 책골목'은 제주 북부, 제주공항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용담 해변 도로변에 위치한 작은 책방이다. 서점보다는 책방이라는 표현이 훨씬 잘 어울리는 이 곳은 상가 건물이 아닌 작은 주택을 개조한 공간이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작은 마당 뒤로 파란 슬레이트 지붕을 쓴 노오란 단층 주택이 보인다. 책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눈 앞에 아늑하고 사랑스러운 공간이 펼쳐진다.  아래 사진과 같이. 

 

책꽂이를 둘러보다 보니 이 곳이 제주인지 내 방 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의 구성이 내 서가의 책과 굉장히 많이 겹쳤다. 책 취향(좋아하는 작가나 관심 주제 등)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생각하면서 서가 곳곳을 둘러보았고, 굉장히 많은 섹션들 앞에 멈춰서 읊조렸다. "아~ 정말 좋은 책들이지!"

 

특히 그 때 나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다시 읽는 중이었기 때문에, 헤세의 섹션에서는 기념(?) 사진을 크게 한장 박았다.  

 

그리고 고심 끝에 고른 책 두 권. 하나는 독립출판물인 사진집 <망한 여행사진집>과 수전 손택의 인터뷰집. 이 두 권의 책이 아주 기분 좋은 제주 여행의 포문을 열어주었다. 여행사진집의 경우 재기발랄하게 전형적인 틀을 깨나간 시도가 좋았고, 수전손택은 당시 내가 굉장히 씨름하고 있던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녀의 번뜩이고 날카로운 지성과 태도는 정말이지 언제나 리스펙.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 직전까지 일을 해야 했을 정도로 굉장히 바빴던 나는 제주 여행 내내 '쉼'이라는 단어만 만나면 멈춰서곤 했었다. (이 사진도 아마 그런 일환일 것이다.) 어쨌거나 숨 고르기를 그토록 갈망했던 내게 있어 제주 여행의 첫 포문을 바라나시 서점에서 연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책을 고르고 읽는 사이, 친구와 내가 시킨 음료가 나왔다. 친구가 시킨 것은 아마도 블루베리 요거트 라씨였을 것이고, 나는 짜이티. 인도에서 먹던 그 맛이 이 맛이었던가... 생각하며 홀짝 홀짝 마셨다. 그리고 포츈쿠키의 종이처럼 각각의 음료에 딸려 나온 글 귀 한 줄. 우리가 받은 것은 다음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