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25. 01:25ㆍ관찰과 기록, 성찰과 결행/지난 이야기
1. 명절 동안 교수님께서 하루도 빠짐 없이 카톡을 주셨는데 내내 읽씹을 하다가(...) 오늘에서야 연락을 드렸다. 나중에 연락드린다는 문자만 하나 남기고 소식이 요원해지는 젊은이가 고까우실만도 한데, 묵묵히 기다려주시는 교수님... 내가 봐도 내 행동이 영 마뜩찮은데, 주변 어른들은 오죽할까. 하지만 말없이 나를 기다려주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잘 알겠다.
2. 미처 정리가 끝나지 않아 부산한 마음을 설명하지 못하고 엉뚱한 이야기만 쏟아내놓았다. 그리고 간신히 마음의 작은 조각을 꺼내보였다. "지금 하는 일을 정리할까 합니다" 나의 두서 없는 이야기를 한참 들어주시던 교수님은 획기적으로 흐름이 전환되는 일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큰 커브를 그리며 완만하게 그 방향이 전환되는 것 같다며 나의 진로 문제도 그런 흐름으로 나아가면 좋겠다고 피드백을 주셨다. 그러며 덧붙이시기를, 진로문제는 평생의 걸친 숙제이며 70대 중후반의 당신께서도 하고 계시니 너무 그 앞에서 주눅들지 말라는 이야기도 함께 해주셨다.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된다!" 는 말씀과 함께.
3.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결단은 과감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교수님께서 해주신 이야기도 일리가 있지만 인생의 중요한 전환기는 아주 단호한 결단을 통해 의도적으로 그 흐름을 바꾸기 위한 무언가를 하면서 오는 것 같아서. 온건한 변화가 필요한 순간과 급진적 변화가 필요한 순간을 잘 구분하고 싶다. 그리고 후자라면 그 누구보다도, 무엇보다도 과감하게 밀어붙이고 싶다.
4. 여담. 오늘 함께 일하는 분에게 작은 선물을 했다. 개인적으로 그 분께 미안한 일도 고마운 일도 있어서 한번쯤은 마음을 전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선물을 건네기까지 진짜 어려웠다. 친하지도 않은 사이인데 이런 선물하는게 뜬금 없지 않아? 투머치한거아냐? 부담스러워하면 어떻하지? 괜히 불필요한 오해만 만드는건 아닐까? 편지쓴건 진짜 오버 아니야? 짧은 손편지도 썼는데 편지 빼고 선물만 줄까? 오다가 주웠다고.... 아냐아냐 그건 더 아니잖아!! 아~~~ 진짜 어쩌지 ㅠㅜ 속으로 온갖 걱정을 다 하고 난리 브루스를 치다가 결국 헤어지기 전에 선물을 건넸다. 선생님은 당황스러워 하셨지만 그래도 기쁜 맘으로 받아주셔서 너무 다행이었다 ㅠ
이 분과 함께 일하는 현장에서 내가 맡고 있는 역할은 전적으로 서포터다. 그래서 나는 마치 공기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모든 것이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돌아가도록 하는 일. 함께 현장에 있긴 하지만 상당 수의 사람들은 내가 그 곳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조차 모를 것이다. 사람 심리란게 참 우습지만, 보이지 않으면 잊혀지고 알게 모르게 많은 것으로부터 배제되며 함부로 구는 사람도 조금 더 자주 겪어야 한다. 미묘한 갑질을 하는 대상이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되면 좀 더 유쾌하지 않은거고 뭐 그런거다.
그런데 이 분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고 먼저 배려해준다. 천성이 선하고 따듯한 사람이라 그렇다는게 잘 느껴진다. 어쩌면 나는 내년 쯤이면 이 현장에서 서포터가 아니라 메인의 위치에서 일을 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됐을 때 나는 이 선생님처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을까? 타인의 입장을 먼저 헤아려야 할 의무같은건 하나도 없지만 그럴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타인의 실수를 너그럽게 이해하고 감싸 안을 수 있을까? 나도 선하고 자상하고 너그럽고 싶다 ㅠ
5. 참으로 오랫만에 입맛이 없는 시기가 도래하였다... 드디어 ㅠㅜ 감격!!! 상당히 오랜 기간 진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식욕이 폭발하고 살도 쪄서 힘들었었는데, 인스턴트도 썩 당기지 않고 그냥 자연식을 조금만 먹으면 만족스러워지는 그런 시기가 온 것이다!! 여기서 운동 조금만 하면 살이 빠지고 몸의 상태가 쾌적해질 것이다. 술도 끊었겠다, 담배는 원래 안피니까 건너 뛰고, 커피도 안마시지, 몸에 안좋은 습관들도 거의 바꾸고, 사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도 없지(브라보 마이 싱글라이프), 이제 살만 좀 빼고 몸만 쾌적해지면 아 좋다 좋아. 이런 쾌적함!
6. 나를 고집해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건 아주 감사한 일이에요. 부디 세상만사를 재미있게 받아들이고, 유쾌하게 사시길, 너무 노력하지도 너무 움츠러들지도 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