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5. 20:23ㆍ당분간 머무를 이야기
오늘 분석은 험난했다. 아침에 기차표를 두번이나 반환해야 했고, 기다리던 시내버스가 너무 늦게 와서 약속시간을 앞두고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 탔고, 약속 시간은 2분 밖에 남지 않았는데 엘레베이터는 꼼짝도 하지 않았고, 결국 지각을 하였다. 분석에서 상당한 인사이트를 얻었지만 내 안에선 설명하기 곤란한 어떤 균열이 점점 벌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분석가에게 짜증도 났다. 세차게 쏟아지는 장마비를 쫄딱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무거운 마음으로 대전에 내려왔다. 분석을 하며 나누었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지 않고 그냥 자버렸다. 집에 와서는 엄마에게 분석 이야기를 조금 했는데 기분이 나쁠 만한 이슈임에도 엄마는 별 감정적 반응 없이 들었고, 당신도 피곤한 하루여서 쉬어야 겠다고 자리를 떴다. 나는 책상에 앉아 아무 뉴스, 아무 동영상이나 틀어 놓았다. 정동 둔마, 초등학교 1학년 때 겪은 학교 안에서의 차별과 배제, 유리실린더 안의 액체와 실린더가 깨져 그것이 바닥으로 모두 쏟아져버릴 것 같다는 상상, 수학올림피아드 문제 같은 것들이 떠올랐지만 깊이 생각할 힘이 없어 그냥 책장 덮듯 덮어버렸다.
그런 뒤엔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일 년 전 제주에 갔듯, 그저 아무 생각하지 않고 혼자 오랫동안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차가운 바람을 쐬고 혼자 기분을 정돈하면 나아질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곧, 내가 책임져야 하고 해내야 하는 수많은 것들을 떠올리며 이러한 마음 조차 도망치고 싶은 비겁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하기도 했다. 어제 다른 강사님과 사석에서 나눈 이야기들, 왜이렇게 점잖냐며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것과 정말 지금의 공부가 내가 원하는 것이 맞냐는 분석가의 말, 불편한 마음, 그 모든 것에 스위치 오프를 하고 좀 쉬고 싶다. 지겹다.
지금도 책상 앞에 앉아있지만 아무것도 집중할 수가 없다. 그저 무료하게 시간만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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