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수

2017. 8. 14. 21:15관찰과 기록, 성찰과 결행/지난 이야기

끝이 난 관계에서 아둥바둥거리고 있는 나와 '너에게 느끼는 감정은 여사친 이상의 것'이라며 불쑥 말을 건네는 그 모두 어제는 그냥 좀 짠했다. 명확한 것만큼이나 애매모호한 것 역시 좋으니 한번 생각해보라는 그의 말에 기분이 불편해진건 사실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말이 그렇게 화나는 무엇도 아니긴 했다.

어제 나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 내가 사랑했고 지금까지도 사랑하고 있는 어떤 남자를 어떻게 하면 내 마음 속에서 떠나보낼 수 있는지 고민했다. 답 안나오는 생각을 계속 하다보니 마음이 꽉 막혀버리는 듯 했고, 나를 잘 아는 똑똑한 사람이 독설을 해주면 마음이 조금 후련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그에게 연락을 했다. 

'빙수 먹자.' 빙수 먹자는 나의 말에 그는 고맙게도 흔쾌히 좋다고 답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그 흔쾌함 때문에 복잡했던 머리 속이 산뜻해졌다. 이어서 그는 갑자기 왜 빙수를 먹자 하는지, 저녁에 있는 음악회에 갈 의향이 있는지, 혹시 울고 있는건 아니냐고도 물었는데(그 때 나는 하도 누워있어서 목이 잠겨있었다.), 어느 밤이 생각났다. 천변이 보이는 벤치에 앉아 오랫동안 울었던 그 날 밤, 나를 달래거나 붙잡지 않는 남자 대신 술 취한 그가 전화를 걸었더랬다. 하도 울어 목이 푹 잠긴 나를 걱정하던 그 목소리와 어제의 그 목소리가 오버랩됐다.

그는 머리에 왁스를 바르고 나타났고 지난 번보다 훨씬 깔끔해져 있었다. 그는 대화 중간 중간 간간히 웃음을 보였고, 나는 그 웃음에 때때로 마음이 부서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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