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졸함

2014. 3. 25. 23:21관찰과 기록, 성찰과 결행/지난 이야기

너는 내가 일순위라고 말하는데 정작 네 행동에서는 나를 아끼는 것이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어느 날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너의 전 여자를 통해 너의 과거 아닌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너의 전 여자에게 화를 내야하는건지, 너에게 이 상황을 말해야 하는건지, 그냥 똥 밟았다치고 넘어가야하는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며칠 밤낮으로 낑낑대면서 내가 내렸던 결론은 그냥 묻어두고 가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이미 과거의 일이고, 네게도 사생활이 있는데 내게 어떤 권한으로 네게 너의 과거를 추궁할 수 있겠나. 네가 먼저 말 꺼내지 않으면 나는 모르쇠로 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러나 솔직히 그 때아닌 폭로가 나를 너무 많이 흔들어 놓았고, 너에 대한 신뢰를 까먹는데 일조한 것도 사실이다. 


네가 내게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들을 깨달았을 때, 아무렇지 않게 사소한 실수인 양 넘어가는 너를 볼 때, 시간이 갈수록 네게는 숨겨진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리고 그걸 완벽한 비밀로 간직하지 못하고 실수로 하나씩 하나씩 드러내놓고 마는 너의 주도면밀하지 못함에, 나는 심각하게 당황스럽고 화가 난다. 네 과거가 치덕이고 복잡하단 것 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화가 난다. 이 사람이 지금 내게 말하는 건 사실일까,는 의심이 스멀스멀 기어오를 때 마다 나는 뒷목에 힘 빡주고 네가 하는 말을 믿겠다고 되내이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렇지만 완벽히 신뢰하진 못한다. 벌써 이게 몇 번 째인도 세기 어려울 만큼, 네가 한 말들은 수정되고 수정되고 수정됐다. 지금 네가 내게 하는 말도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나는 확신할 수가 없다. 이게 내 믿음이 부족한 탓은 아닐까, 내 스스로에게 묻기도 하고 너를 향한 내 믿음이 겨우 이 정도냐며 스스로를 채찍질도 했다. 근데 내 믿음이 부족한 탓은 아니라는 생각이 부쩍 든다. 


너는 하루에 얼마나 나를 생각할까. 아니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바쁜 일과 중에, 회사 일에 치이는 걸로도 충분히 머리 아프고, 때려치고 싶은 욕구 이겨내기에도 바쁜 너에게 내 생각을 하라며 채근댈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하지만 적어도. 나에겐 전화 한 통 하지 않았으면서 다른 여자에게 전화 통화 할 수 있냐고 카톡을 보내는건 좀 아니지 않냐고 묻고 싶다. 분명 나에게 저녁을 굶었다고 했는데, 고깃집에서 여러 사람이 먹어야지만 나올 수 있는 금액의 카드값을 지불한 내역의 문자를 보면서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차라리 알람을 해제해놓던가, 왜 음악을 듣는데 하루 지난 결제 내역이 운명처럼 상단에 떠야만 했던걸까. 넌 그정도로 치밀한 범죄하곤 먼 사람인 것 같은데, 왜 꾸준히 나를 속이려 드는가.


나는 지금 너에게 최선을 다해 발악하고 있는건데 너는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네게 계속 하는 이야기들이 너무 유하게 표현되서일까? 단호하게 화내면 오히려 눈물 뚝뚝 흘리면서 사랑을 담보로 흔드는 네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내가 한심해서일까. 작은 상황에서도 전혀 배려 따윈 하지도 않고, 오히려 배려해달라고만 하는 네 어린 마음이 이제는 지친다. 지치지 않으려고 발악하면서 노력하고 마음을 붙잡으려 하지만. 너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변하지 않을거다. 실망스런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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