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13. 11:54ㆍ관찰과 기록, 성찰과 결행/지난 이야기
1
앞선 연애들에서 계속 상처받았던 나를 제일 가까이서 온 몸으로 받아냈던 사람은 엄마도 아닌 언니었으니까,
언니가 나의 새 연애에 대해 걱정과 동시에 기대를 한건 굉장히 당연한 일이었을거다.
그 친구를 소개시켜주고 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언니는 힘들게 입을 뗐다.
"배려는 있을지 모르지만 예의는 없었다"
2
첫째, 내가 너의 친언니나 가족이었어도 그 친구가 그렇게 다리를 꼬고 삐딱하게 앉을 수 있었을까.
여자친구의 지인을 처음 소개 받는 자리, 그것도 열 살이 많은 이를 소개 받는 자리라면 자연스럽게 긴장해야하는건 아닐까.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다리를 꼬고 앉는건 무례한 일이고 내가 몇 번을 눈치를 줬는데도 자세가 고쳐지지 않아 굉장히 불쾌했다.
나와 처음 만나는 그 자리를 편하게 생각해서 였을 수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기본적인 예의가 아니다.
너에 대한 배려는 있을지 모르지만 기본적인 예의는 부족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태도로 나중에 어른들을 만나게 되면, 그리고 내가 만약 네 가족이었다면, 나는 그 부분이 계속 걸렸을 것 같다.
둘째, 너에 대해 궁금한 점이 없다는 것에 많이 놀랐다.
지금 너희는 서로에 대해 굉장히 궁금한 것들이 많아야 하는 시기인데 궁금한 것이 없다니? 너희가 대화량이 굉장히 많아서 서로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바로 바로 이야기해서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지금 시기는 묻고 물어도 궁금한 것이 더 많아야 하는 때가 아닌가 싶다. 차라리 너를 왜 좋아하냐고 물어볼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다리 꼬고 있는 모습이 너무 거슬려서 그냥 넘어간 것이 아쉽다.
셋째, 내가 최근에 헤어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여자친구의 손을 잡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
연인이 아무리 좋아도 어려운 자리에서는 마음을 누르는 법도 알아야 한다. 심지어 그 친구는 내가 최근에 헤어졌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데 만약 이 친구가 나를 배려했더라면 내 눈 앞에서 너의 손을 그렇게 계속 잡고 만지작 거리진 않았을거란 생각이 든다. 부모님이 있는 자리었으면 달라졌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예의가 없는 행동인건 확실해 보인다.
3
나 역시도 얼마 전까지 그 친구와의 만남을 지속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치열하게 내적 갈등 했으므로,
그리고나서 계속 만나보는 방향으로 마음을 정리했으므로, 언니의 말을 듣고 나는 다소 복잡해졌다.
그 친구를 만난 언니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시는 것을 보면서,
그건 단지 하루종일 돌아다닌 탓에 피곤해졌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알기에 몸이 달달 떨렸다.
언니의 반응은 역시나 내 예상대로였고 나는 다시 울고 싶은 기분이 됐다.
나는 내 남자친구가 나 뿐만 아니라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도 잘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그건 내 욕심인걸까.
4
언젠가 염이 나를 좋아했을 때 언니는 염을 만나보고 염과 같은 남자랑 연애를 하라고 했었었다.
그리고 어제 오랜만에 염을 다시 만난 언니는 그 때와 똑같이 "염과 같은 남자를 만나"라고 말했다.
이제는 다른 여자의 남자친구가 된 그 사람과 내가 연애를 했으면 어땠을까.
나는 안다. 내가 그와 연애했으면 굉장히 편하게 연애했을거란걸.
그가 내 마음을 기다려줬다면, 내가 괜찮아지길 기다려줬다면, 나는 그와 연애했을까?
5
다른 사람의 연애 조언 따위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나지만,
가족과 언니의 조언만큼은 귓등으로 흘려 들을 수가 없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을 들이고 지켜보고. 그러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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