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 적는 요즘 일들

2022. 4. 8. 03:28당분간 머무를 이야기

1. 서촌에서 걷는데 문득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그대 오직 그대 만이 내 첫 사랑, 내 끝사랑')를 듣고 발걸음이 멈췄다. 나중에 찾아보니 <끝사랑>의 가사라고.

그 가사를 듣고 곧바로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살면서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고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참 감사하고 귀한 일이다. 삼 년 간의 연애가 끝났다는 사실을 사 년이 지난 이후에서야 간신히 받아들이고 있지만, 서툴게라도 매듭을 짓고 있어서 다행이다.

 

2. 얼마 전 지하철역을 빠져나오다가 문득 깨달았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도 이 관계가 끝났다는 사실을 맘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이미 많은 것들이 변했다는 것을, 2015년은 이미 오래 전 끝났다는 것을 이제는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다.

 

3. 오직 사랑만 갖고 결혼한 친구의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며 속상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부부 만큼은 잘 살기를 바랐다. 하지만 사랑은 식고, 서로 얼굴을 보지 않으며, 따로 잠을 자고, 손을 잡지도, 산책을 하지도, 밥을 함께 먹지도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친구는 몸도 맘도 파리하게 말라간다. 그들의 끝이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 

 

4. 최근 분석가와 적잖은 시간 동안 분석한 꿈이 하나 있다. 내가 폐가가 된 부엌에서 나무젓가락으로 개구리를 잡기 위해 용을 쓰는 꿈이었는데 개구리들은 나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서 더러운 하수구로 뛰어 들었다. 아무리 분석가와 대화를 나눠도 실마리를 잡기는 커녕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지난 분석에서 분석가는 매우 흥미로운 해석을 들려주었는데 그것이 매우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 "인간성의 성숙은 여성성의 성숙과 함께 가는 것일 겁니다. 여성성은 성숙하지 않았는데 인간성은 성숙했다, 그런건 불가능할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깨달은 것은 다음과 같다. 내가 남자(특히 나보다 나이 많은 남자)를 두려워 하고 있다는 것, 남자를 익보다 실이 큰 risky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무작정 도망가지 않고 성숙하게 겪어내려고 애써 노력은 하고 있다는 것. 나는 그런 맘을 분석가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분석가께서는 자기가 받은 꿈의 인상을 들려주었는데 그것이 약간의 위로가 되었다. 

 

5. 깔끔한 사람들 틈바구니에 있어서 그런지 내 성격과 생활도 상당히 깔끔해졌다. 특히 일처리가 그렇다. 함께 일하는 분들께도 그런 피드백을 곧잘 받아서 나만의 착각은 아닌 듯하다. 일도, 인간관계도, 깔끔하고 담백한 것이 좋다.

 

6. 사람들과의 갈등을 피하지 않고 맞서는 경향이 생겼다. 특히 최근에는 옷을 환불하는 문제(주문한 것과 다른 사이즈의 옷이 배송와서 환불을 하기로 했으나 판매자가 옷에서 '세탁냄새'가 난다고 하여 환불을 거부하였다), 고질적인 대문 앞 주차문제로 민원을 넣어 담당 공무원과 언쟁을 한 것, 부모님 교통사고 합의(보험사에서는 내가 몇 명의 변호사와 손해사정사를 통해 알아본 합의금액 평균보다 1/10도 안되는 금액을 불렀다) 같은 것들로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와 부딪혔다.

오래도록 '좋은게 좋은 것'이라 생각하며 유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것이 지혜라 여겼지만, 그것이 정당한 나의 권리나 권익을 지키는데 썩 좋은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치열하게 싸우기로 맘 먹었다. 실제로 세 가지 이슈 모두 소송까지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다. 

싸워야 한다면, 그것이 필요한 싸움이라면, 피하지 않고 얼마든지 싸우겠다.

 

7. 요즘 제일 하기 싫은 것은 공부. 제일 중요한 일을 제일 하기 싫어서 큰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요즘 내가 경계해야 하는 가장 무책임한 태도. 비겁해지지 말자. 내가 결정한 일에 책임지자. 반드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8. 함께 일하는 기관의 K 선생님에 대한 짧은 코멘트. K 선생을 볼 때 마다 남동생과 오버랩이 된다. 두 사람의 나이가 비슷하기도 하지만, 깔끔한 일처리, 사람을 대하는 유연한 태도 등이 매우 유사하다고 느껴진다. 덕분에 정말 쾌적하게 일을 하고 있다. 지저분의 끝을 달리는 다른 과제 때문에 더욱 비교되어서 그렇겠지만 요즘 제일 고마운 사람은 그 양반, 그리고 K 기관의  S 선생님. 그 분은 실제로 뵌 적은 없지만 그 분과 일을 할 때면 이렇게 젠틀하게 일을 할 수 있다니, 깜짝 깜짝 놀란다. 젠틀하고 품격있고 또 배려심 많은 클라이언트. 더 열심히 잘 해드려야지.    

 

9. 우리 엄마는 3살 짜리 아이 같다. 사랑을 달라고 떼쓰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으면 토라지는. 사랑이 없으면 삶이 시들시들하다는 엄마같은 삶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 것, 그것이 분석에서 얻은 큰 수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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