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26. 15:06ㆍ관찰과 기록, 성찰과 결행/지난 이야기
밤새 우크라이나 키예프 상황을 라이브로 지켜 보았다. 가슴이 꽉 막힌 듯 했고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긴장한 상태로 쏟아지는 불안과 막막한 감정을 받아내야만 했다. 그 옆에는 황현산 선생의 <밤이 선생이다>가 놓여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나는 전쟁이 무섭다' 파트를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막상 책은 읽는 둥 마는 둥했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노트북에서든 바깥에서든 작은 소리만 흘러나와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불안함에 떨고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실시간 라이브 옆으로 쏟아지는 한국인들의 댓글 중 일부는 광기처럼 느껴졌다. 강 건너 불 구경을 하기 위해 집결해 있는 자들처럼, 빨리 포탄이 떨어지고 굉음이 나는 것을 보고 싶다는 등의 댓글들이 우르르 떴다가 곧 다른 댓글에 묻히곤 했다. 전 날 저녁에 있었던 후보 토론회에서 느꼈던 감정보다 더 감정이 격앙돼 결국엔 댓글창을 닫았다. 새로고침으로 실시간 뉴스를 받아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러시아의 비토권 행사로 인해 유엔 안보리의 러시아 규탄 결의안이 무산됐다는 뉴스가 올라왔다. 그 밑에는 '종이와 펜'만으로는 나라를 지킬 수 없다며 자국을 공격하는 나라에게 10배 100배로 보복을 해줄 수 있을 만큼의 힘을 키워야 하고 필요하다면 전쟁과 선제공격도 불사해야 한다는 댓글이 줄지어 달렸다. 어제 밤 읽은 황현산 선생의 문장이 가슴을 후려쳤다. "분쟁의 해결책 가운데 전쟁보다 더 많은 비용을 치르게 하는 것은 없다. 전쟁은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인간을 인간 아닌 것으로 만든다. 어떤 명분도 이 비극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 (중략) 전쟁은 단순한 추상명사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포탄이며, 구덩이에 파묻히는 시체 더미이며, 파괴되는 보금자리이며, 생사를 모른 채 흩어지는 가족이다." 눈 앞에서 벌어지는 전쟁 속에서 헤아릴 수 없을 고통과 공포를 경험하는 사람들과 나라의 모습을 쇼처럼 소비하고 싶어하는 이들의 모습은 푸틴만큼 고약한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도현을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현지 분위기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걸 들으면서 주책없이 눈물이 흘렀다. 철저하게 고립된 채 자력으로 이 불가능한 싸움 앞에서 결의를 다지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떠올릴 때마다 비통함에 잠겨 숨이 멎을 것만 같다. 어떤 말도 꺼낼 수가 없다. 때로는 우리나라의 불운한 현대사가 떠올라, 그리고 언제든 나에게 우리에게 되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몸이 떨린다.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들이 끝나는 날은 정녕 올 수 없는 것인가. 부디 더 많은 희생자 없이 하루 빨리 전쟁이 종식되기를 온 뫔으로 바란다. 정치적 계산과 야욕 앞에서 무고한 생명들이 희생되는 일이 더 이상 인류사에서 되풀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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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Ukrainian man carries a fish and a cat he saved from the residential building hit by the Russian missiles earlier today in Kyiv. Humanity always prevails, even in dark times like this.
(출처: https://twitter.com/franakviacorka/status/1497540915539460096)
우연히 트위터에서 본 사진. 이틀 동안 트위터를 종료하지 못한 채 해당 창을 계속 켜두었다.
댓글에서 어떤 유저가 이 남성이 헬멧 하나에 총만 들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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