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희생자 정차웅 군을 자수 놓다.

2014. 7. 30. 16:27관찰과 기록, 성찰과 결행/지난 이야기


전 국민이 생중계로 세월호 침몰을 지켜보던 날로부터 100일이 훌쩍 지났다.

벚꽃 날리던 4월의 봄날은 어느 늦여름이 됐고, 그 사이 우리는 지방선거와 브라질 월드컵이라는 큰 일을 치뤄냈다.

그렇게 냉장고 문을 열다말고 눈물을 쏟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힘들어하던 우리네 일상도 언제 그랬냐는 듯 진정됐다.

세월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빠르게 식어가는 중이며 '세월호'라는 단어에 완전히 이골이 난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런데 100일이 지나도록 정작 중요한 것들은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아무 것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아직도 바다 아래는 10명의 실종자가 있고, 사명감 하나에 의지해 목숨까지 걸고 구조작업을 진행하는 다이버들과, 일 매일을 무너지는 가슴과 싸우는 유가족들이 그대로 계신다. 그리고 무능한 정부와 사건 해결에 미온적인 여당, 무능한 야당, 사명감 없는 언론 역시 그대로다.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많은 아이들이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많이들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사고가 되고, 사고가 수습이 되는 과정에서 어느 누가 '어른스러운' 행동을 보여줬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해운회사 직원들이? 해경이? 공무원들이? 언론이? 대통령이? 국민들이? 그리고 나 자신은? … 세월호를 잊고 사고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진정 어른된 자세인가. 정말로 묻지 않을 수 없다. 


긴 침묵과 고민 끝에 나는 '그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박재동 화백이 한겨레에 연재했던 아이들의 그림을 토대로 새벽 내내 바느질을 했다. 

사진 속 남자 아이는 단원고 학생인 정차웅 군이다. 수를 놓으며 차웅 군과 관련된 인터뷰와 기사를 계속 찾아 읽었는데,

남동생 같은 이 아이야 말로 참으로 용감하고 '진짜 어른'다운 아이였다는 생각이 들어 내내 부끄럽고 눈물도 나고 미안했다.


서툰 솜씨지만 세월호를 마음으로 새기고 몸으로 새기는 작업을 계속 해나갈 것 같다. 

공범은 아니지만 공범의식을 끊임없이 느꼈던 봄 날의 그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 지은 죄도 없으면서 너무 큰 고통 받는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큰 죄를 지었음에도 벌 받지 않고 부끄럼도 없이 고개 빳빳하게 들고 하는 '어른들'이 되지 않기 위해서. 


-


덧붙임.


차웅군을 수 놓은 이후로 온유, 덕하 등 다른 단원고 아이들과 일반인 희생자분들의 수를 꾸준히 놓고 있다. 

솜씨가 서툴고 손이 느린데다가 바쁜 일이 겹쳐 안 그래도 느린 작업이 훨씬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잘 마무리해서 유가족들께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최근에 5.18과 세월호를 떠올리게 했던 문장 하나를 아래에 덧붙인다. 

시인 보드리야르의 말이다.


학살의 망각도 학살의 일부이다. 

왜냐하면 학살의 망각은 또한 기억의 학살이며, 역사의 학살이고, 사회적인 것 등의 학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망각은 또한 사건만큼이나 본질적인 것이다.


문부식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망각은 또 다른 학살의 시작"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 

그리고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반성하고 성찰하는 것. 

유가족을 외롭게 두지 않겠다는 것. 

어쩌면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15년 2월) 


-


덧붙임.


올 4월 송과 함께 노란 리본을 만드는 일을 했다. 그리고 다시 바늘을 잡았다.


(16년 8월)

 

-

 

덧붙임.

세월호 침몰이 박 전 대통령 탄핵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말을 듣는 동시에 장탄식과 눈물이 쏟아졌다. 유투브에서 유가족들이 오열하는 동영상을 보고 또 한 번 눈물을 쏟았다. 

그간 새긴 자수들을 모두 꺼내 오랫동안 쓰다듬으며 많이 울었다.

 

(17년 3월)  


-


덧붙임.

왜 나는 안산에 가지 않는가, 진도로 향하지 못하는가,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서서히 잊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올해 4월이 되기 전에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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