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26. 00:24ㆍ관찰과 기록, 성찰과 결행/지난 이야기
일주일에 책을 열 권 읽는다는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이 사람이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한 주 동안 읽은 책 목록을 쭉 읊는데 그게 참 가관이다. "존재와 무(장 폴 사르트르), 시지프 신화(카뮈), 니코마스 윤리학(아리스토텔레스), 사회계약론(장 자크 루소), 아인슈타인의 우주(미치오 카쿠), 현상학(하이데거? 후설?) … 마지막으로 자본론(칼 맑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람들은 "도대체 대학 다니며 책을 몇 권이나 읽었냐"며 물었고 그는 또 미간을 찡그리며 고민하다가 "한 3천 권 정도 읽었을까요? 아직 부족해요."라고 대답했다.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그 순간 나는 결국 참았던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굉장히 연극적인 상황이었다.
이 상황은 책을 읽는 이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 중에 하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다. 읽은 책은 많은데 정작 제대로 소화시킨 책은 너무나도 빈곤한 것. 난 이런걸 '다독의 함정'이라고 부른다. 나는 책이 밥과 같다고 생각한다. 밥도 충분히 씹지 않고 그냥 삼켜버리면 소화는 커녕 똥으로 다 배출될 뿐이다. 독서 역시도 마찬가지라서 충분하게 씹는 시간을 거치지 않고 그냥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마구 먹기만하면 영양은 커녕 몸에 독이 된다. 독서가 사색의 영역이 아닌 소비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즉, 이것 저것 '다독'하는 대신 좋은 책을 여러 번에 걸쳐 '다독'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조선시대의 선비들 처럼 말이다. 책이 비싸고 종류도 다양치 않아서 한 권의 책을 만 번씩 읽은 옛 선비들은 일평생 수백만 권의 책을 읽는 '다독'을 하진 못했지만, 한 권의 양서를 수업이 '다독'해 수 많은 고전을 남기지 않았는가. 그러니 부디 좋은 책을 여러 번에 걸쳐 읽고 또 읽자. 그렇게 하나라도 제대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백 권을 엉성하게 읽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관찰과 기록, 성찰과 결행 > 지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필요한 말의 나열 (0) | 2014.09.11 |
---|---|
일상의 단편 그리고 아이러니 (0) | 2014.09.07 |
다시 끝을 맞는 자세 (0) | 2014.08.16 |
장어 파티 (0) | 2014.08.16 |
기타 치는 내 모습 (0) | 2014.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