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파랑새 2021. 11. 26. 18:07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여럿 모여 갖는 떠들썩한 술자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어떻게서든 생길 수 밖에 없는 집단적인 분위기, 그 분위기를 맞추고 띄운다고 치켜 세워주는 일, 반대로 죽인다고 핀잔을 주는 일, 누군가의 잔이 비진 않았는지 살피고 잔을 채워주는 일, 잔을 비워주는 일, 그런 자리에서 오가는 어설픈 농담들과 웃기지도 않는데 웃어야 하는 일 등을 싫어했다. 개인 사업을 시작하고 '난 이제 조직 생활을 하던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겠구나'라고 생각한 이유 중에 하나도 이것이었다. 사장인 내가 단체로 우르르 몰려가 술을 마셔대는 회식을 싫어하니까 자연히 우리 사무실엔 술자리 회식이 없었다. 다 함께 하는 식사는 별 일이 없으면 점심시간이고, 설령 저녁에 먹게 되더라도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들만 반주를 하는 정도로(심지어 자기 술은 자기가 따라 마신다) 끝나는 정도다. 그래서 어제의 '회식'이라는 형태의 술자리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피하고 싶은 자리였지만, 전 날 그래도 한번 가보라는 태성의 권유가 계속 머리 속에 맴맴 돌아 다녀온 것이었다.

 

내 관심사의 0순위는  어린 강사들이었다. 그들이 술을 너무 마시지는 않는지, 안주를 못 먹고 있지는 않은지, 옷에 무엇을 흘리진 않았는지, 나이가 많은 이가 그들에게 부당한 요구나 압박을 주지는 않는지, 집은 잘 들어갔는지 등을 살피고 챙기는 것 같은 일들이 중요했다. 그러던 중 술 취한 어린 여강사들이 내 어깨에 기대거나 나를 끌어안고 헛소리를 해대는걸 듣다가 문득 마음이 씁쓸해졌다. 분명 외형상 술자리의 분위기는 편안했지만, 어린 강사들은 분위기를 어떻게든 끌어올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술을 마시고 맘에 없는 아양을 떠는 모습이 예뻐보이기 보다는 안쓰럽게 느껴졌다. 나는 그들 앞에 놓여진 앞접시에 가장 좋아보이는 안주를 계속 놓아주고, 물컵에 계속 물을 채워주고, '아무 것도 안해도 이미 넘치게 사랑스러워요 샘! 그런거 하지 말고 그저 편하게 먹고 놀아요' 라는 말을 해주었다. 

 

기관의 임원들은 그들 옆에 앉아 계속 술잔을 채웠고, 시덥지 않은 농담을 하며 어린 여강사들을 웃기려고 들었으며, 그들이 '꺄르륵'하고 웃으면 대단한 무엇이라도 된 마냥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도 안되는 농담을 더욱 꺼내 놓았다. 그 분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술자리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다고 생각하시는 듯 하였지만, 실은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밥줄'을 쥐고 있는 기관장의 재미없는 농담에 힘겹게 호응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에선 내가 유일하게 그들과 경제적 이득관계로 묶여 있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매우 거침없이 꺼내놓았고 그들이 가진 권위주의와 비합리에 대해 자유분방하게 난타했다. 그들이 어린 여강사들에게 술을 강권할 때 '분위기가 이미 오를 대로 올랐으니 술을 그만 주시는게 어떻겠냐, 이제부터는 다들 각자 따라마시면 좋겠다'고 하였다. 술을 따라야 할 일이 있을 땐 어린 여강사들 대신 내가 술을 따랐고, 어린 친구들에게 좋은 안주를 챙겨주었고, 난방이 안되는 가장 추운 자리에 앉아 있었던 막내 강사와 자연스럽게 자리를 바꿔 앉았다. 내가 막내 연구원으로 첫 사회생활을 했을 때 사수들이 내게 회식자리에서 해주었으면 했지만 해주지 않았던 것들을 지금 내가 이들에게 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조금 이상해졌다. 

 

2차로 간 술집에서 막내 여강사가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고 하여, 핸드폰을 찾기 위해 그 친구를 데리고 1차로 갔던 술집에 갔다 오겠다고 하니 어린 여강사들이 모두 우르르 일어나 내게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를 포함한 모두가 당황했으나 결국 그들 모두를 데리고 핸드폰을 찾으러 나섰다.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어린 여강사들을 모두 이끌고 초 겨울의 밤거리를 걸었고, 약국에서 숙취 해소제를 사서 먹였고, 편의점에서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그들은 아이스크림을 입에 가득 문 채로 10년 전에 회식을 피해 도망갔던 내가 했던 것과 똑같은 말들을 했다. 나를 껴안고, 팔짱을 끼고, 뽀뽀하고, 앙탈과 애교를 부리며 '선생님, 언니라고 불러도 되나요? 언니 사랑해요! 언니 너무 멋져요! 언니 너무 좋아요!'를 외쳤다. 술자리로 복귀하니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입에 침이 마르게 나에게 참으로 보기 드문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하였다. 물론 어린 강사들도 가세하였다. 

 

나는 안다. 그들이 내게 '좋은 사람'이라고 한 평가는 실은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을.

-  나의 극심한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현재의 시대적 흐름과 잘 부합하고 (10년 전만 했어도 나는 이런 성향 때문에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지 않나) 앞으로도 시대적 흐름이 바뀌면 언제든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 상대에게 얻을 어떠한 이득도 없기 때문에 자유분방할 수 있는 상태, 내가 충분한 능력과 힘이 있어서 당당하게 내가 옳다 여기는 말을 할 수 있는 상태를 '편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용감하다'고 할 수 있나? 사람들은 내게 당차고 용기있다고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내가 상대에게 얻을 이득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은 아니었나 싶어서. 어쩌면 진짜 용기있는 행동은 이득을 포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10년 전이었던 20대의 나는 힘이 없었고 부당한 상황에서 저항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30대의 나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10년 후 40대, 50대의 나는 30대의 후배들에게 무엇을 해주고 싶어할까. 나는 꼰대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