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방살이의 지겨움
월세방 빌트인 세탁기에 대한 글을 적다가, 문득, 셋방살이가 너무나도 지겹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 방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마침 잠깐 짬도 나고 해서 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지금 사는 곳은 1.5룸인데 지난 6월에 입주했다.
처음에는 대전에 있는 아파트 물건들을 보았으나 기본적으로 터무니없이 비쌌고, 비싼 값만큼의 메리트도 없었다.
세종에 있는 신축 아파트 매물들은 대전보다는 저렴했으나 사무실과 너무 멀어서 출퇴근 시간이 너무 길어졌다.
이런 저런 선택지를 놓고 저울질 하다가 결국 "치안이 나쁘지 않고 햇살이 잘 드는 남향집"이란 조건만 생각하고 이 곳으로 계약을 했다.
입주할 당시, 방에서는 모든 곳에서 담배 쩐내가 났다. 벽지, 에어컨, 화장실, 옷장, 냉장고, 심지어는 현관문 초인종에도.
원래 살던 이는 남자라고 했다. 세탁기 세제통은 곰팡이 소굴이었고 현관등은 나가 있었고 다른 곳 역시 말할 나위도 없었다.
부동산과 집주인이 발 벗고 나서서 월세를 깎아주겠다고 했다. 도배를 새로 하는 대신 월세를 깍는 조건이었다.
입주를 서둘러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집주인이 거는 조건을 수용했다.
방에 배어있는 담배 냄새를 빼기 까지는 무려 한 달이 걸렸다.
한 달 동안은 입주를 미루고 시간 될 때마다 방에 들러서 청소를 하고 담배 냄새를 빼기 위핸 전쟁 아닌 전쟁을 치뤘다.
도배비 보다 많은 돈이 나갔다. 한 달 월세도 고스란히 날아갔다.
집주인은 불이 들어오지 않는 현관등을 내 사비로 고치고 살라고 했으나 다투고 싶지 않아 '그럼 이대로 살겠다'고 했다.
여름에는 세탁기가 한 차례 고장났고 무려 삼 주간 빨래를 할 수 없었다.
집주인은 엄청난 고물 세탁기 하나를 줄테니 그걸 베란다나 화장실에 놓고 쓰라고 했다.
베란다에는 수도가 없고, 그렇다고 화장실에 놓자니 샤워를 할 공간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니
집주인은 당당하게 '그럼 방에 놓고 쓰라'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손세탁하면 되지 왜 유난떠는지 모르겠다'고.
추석 즈음해서 집주인이 내게 집이 팔렸다고 연락을 해왔다.
매매로 내놓았단걸 알았으면 애시당초 계약도 하지 않았을거라 하니 그는 아무렇지 않게 부동산 탓을 했다.
변경된 집주인은 본인이 직접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처라는 이가 '본인은 공인중개사'라고 소개하며 자기 명의의 통장으로 월세를 입금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법적 절차와 내용을 모두 갖추지 않았고 법 이치에 전혀 맞지 않는(심지어는 위법하기까지 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내가 본인의 요구조건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에 분을 삭히지 못했다.
그는 내게 이해력이 달린다는 둥 아무리 설명해줘도 이해를 못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결국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고 막말을 내뱉었다.
마침 옆에 있던 변, 검들이 전화기 사이로 새어나오는 통화내용을 듣고는 모두 실소를 터트렸다.
김 변이 자기가 아는 부동산 중개인(유명한 법인의 관리직)에게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그가 말하길,
"최 대표에게는 좀 미안한 말입니다만, 성차별적인 이야기 싫어하는거 아는데요. 아줌마 중개인들이 그래요.
법은 잘 모르면서 무작정 우기고 사기치는 사람이 많아요."라면서 그들의 수법을 설명해줬다.
당시 같이 일했던 법무부 사람들은 아직도 내게 근황을 물을 때마다 집주인의 처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한다.
법무부 장관이 갔어도 자기가 공인중개사(=전문가)인데 왜 나서냐고 했을 거라는 농담과 함께.
무식에는 법이나 논리보다는 주먹이 빠르다고 했던가.
내가 김 변에게 "이제부터는 법대로 대응 하겠다."는 취지의 통화를 하고 있던 그 시간,
우연과 우연이 겹쳐 엄마가 자연스럽게 이 사건에 끼게 됐고 기어이 임대인을 직접 만나 담판을 짓고 오고야 말았다.
매끄럽지는 않으나 치덕이던 상황이 일단락이 나긴 났고,
이 과정 전반에 걸쳐 임대인과 그의 처 그리고 나는 인간적인 화해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감정이 상했다.
법률관계 당사자가 아닌 이가 상식 밖의 행동을 하며 무례하게 굴어도 차분하게 대화하려고 했던 것은
어떻게든 자연스럽고 좋은 모양새로 매듭을 짓기 위한 노력이었다만,
시간이 좀 지난 지금에서 돌아보면 그런 욕심일랑 일찌감치 버리고 내용증명을 보내는 편이 나았겠단 생각이 든다.
나름 한 분야의 전문가라는 이가 위법한 이야기를 일말의 부끄러움도 보이지 않고 말하는 순간,
단호하게 털고 그 자리를 일어섰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게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만약 내가 그를 임차인과 임대인의 처가 아닌 고객과 공인중개사로 만났다면,
돈과 시간을 쏟아 붓더라도 그가 내뱉은 말에 상응하는 행정처분을 비롯한 법적인 처벌을 끌어냈을게다.
정의감이나 사명감 따위는 바라지도 않지만, 법이나 전문자격증을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한다고 본다.
임대인의 처를 보면서 느낀건 세상에는 무능하고 못된 (진심으로 이런 표현을 지양하려고 노력하지만, 이번은 어쩔 수 없다. 사실은 사실.)
공인중개사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부동산 중개인 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군이 마찬가지여서 어딜가나 선하지 않은 직업인들은 있을게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크게 쪼들리지도 않고, 법률적 지식도 있고, 언제든 법률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전문가 풀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나 역시도 부동산 중개인과 관련해 지겹고 짜증나는 일 투성이인데(다행히 아직까지는 억울한 일을 겪지는 않았다.)
나보다 더 어리고, 법을 잘 모르고, 경제적인 여유도 없고, 심지어 주변에 도움을 받을 수 조차 없는 이들은 오죽할까.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