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파랑새 2021. 12. 25. 16:42

그리워하는 선생님께서 남긴 고별 인사를 읽었다. 선생님의 마지막 인사 '여러분 안녕히...'를 앞에 두고 하염없이 울었다. 

작별의 순간은 아무리 해도 실로 익숙해지지 않는다. 3년 전 이맘 때 쯤 헤어짐을 고한 옛 연인 조차 제대로 떠나보내지 못해 헤매고 있는데 떠나보내야 할 사람들과 시간들은 계속 늘어나기만 한다. 

 

그 날 밤 꿈 속에선 그리운 사람이 나와 자기와 다시 잘해볼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백번도 천번도'라는 말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것을 애써 누른 채로 평정심을 되찾으려 했다. 나와 진정으로 잘 해볼 마음이 있는걸까, 아니면 혹시 오랫동안 자기를 잊지 못하고 헤매는 나에게 연민이나 죄책감을 느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그에게 진실로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것인지 물었다. 그 순간, 그는 떠나갔다. 

 

눈을 뜨니 새벽이었다. 뒤숭숭한 맘에 휴대폰을 꺼내 보니 포털 사이트는 박근혜 씨의 기사로 어수선했다. [단독]과 [속보]라는 머릿말을 단 기사들이 실시간으로 쏟아졌는데 대부분은 박씨의 사면 및 복권이 유력시 된다거나 이에 대해 여당 관계자와 이미 논의가 끝났다는 내용들이었다. 사람들의 반응 역시 복잡했다. 기사의 내용이 현실화 되진 않을까 하는 우려, 분노, 현 정부가 박씨의 사면을 추진하진 않을 것이라는 기대, 현 정권과 대선에 영향을 주기 위해 '기레기'들이 펼치는 '공작질'일 것이라는 의심, 박씨의 사면과 복권에 대한 기대, 문 대통령의 의중에 대한 추측 등이 마구 뒤엉킨 채로 쏟아졌다. 나 역시도 심사가 복잡해졌다. 어두운 방 안에서 가방에 달고 다니는 노란 리본을 한참 들여다보며 7년 전의 기억과 다짐들에 대해 떠올렸다. 날이 밝았고 설마 설마 하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소중한 것을 잘 떠나 보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냥 떠나보내기도 어려운데 '잘' 떠나보내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이 관계의 종결을 선언했을 때 전적으로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깔끔하고 담담히 사랑을 떠나보내는 일은 얼마나 많은 용기를 요하는 일인가.

상대방과 나의 민낯을 마주하고 이별을 결단하는 것 역시 못지 않다. 관계의 진실을 마주하고 욕망을 포기한다는 것, 예의를 다해 이별하는 것 역시 큰 각오를 필요로 한다.

불현듯 찾아온 이별은 말할 것도 없다. 마지막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누군가를 보낸다는 것은, 속수무책으로 그의 부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어떤 작별들은 선결 조건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남아 있는 사람이 의문과 의혹을 풀어야만 하는 경우도 있고, 책임소재나 배상 문제를 따져야 하기도 한다. 내 자신과 타인, 세계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해야 하고 답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어야 하며 혹은 거대한 상대와 싸워야 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 작별과 상실의 과정은 선결을 요하는 일들이 끝날 때 까지 기약 없이 연기돼 버린다.  

 

앞선 과정 이후에 갈 곳 잃은 마음을 거두어 들이고 그리움과 죄책감, 분노, 우울 같은 감정을 달래고 지켜보는 일 역시 지난하고 고되다. 나선형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듯 견딜 만한 상태와 견디기 어려운 상태 사이를 왕복하기란 오롯하게 통과해야만 한다. 

 

어슴푸레한 새벽빛 속에서 나는 내가 지금 삶의 커다란 상실을 마주하고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래의 것들을 다짐했다.

- 개인적인 차원과 사회적인 차원에서 경험한 엄청난 슬픔에 대해 잘 들여다 보는 것, 그 과정에서 비겁하게 회피하지 않는 것, 해야할 일들에 대해 기꺼이 책임을 지는 것, 그렇게 잘 애도하고 떠나보낼 수 있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