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파랑새 2019. 1. 23. 15:10

 

어느 순간, 사는 공간이 나를 쏙 빼닮았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것만 정확하게 있는 공간. 

 

나는 일상생활을 하는데 많은 물건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물욕이 없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런 저런 물건을 산다고 행복해지지도 않는다. 되려 스스로 통제 할 수 없을 정도로 물건이 늘어나면 심각하게 스트레스를 받는데, 문제는 내가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도 아니고 여기저기 신경을 쓸만큼 부지런하거나 머리 좋은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통제할 수 있는 물건의 범위라는게 매우 제한적이라는데 있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만 남기는 것은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생존방식이었던 것 같다.   

 

내가 사는 곳에는 침대도 TV도 없다. 가구라고 부를 만한 것은 책상이 전부인데 그 녀석이 밥상도 되고 다리미판도 된다. 빌트인으로 들어가 있는 옷장에 이불과 사계절 옷, 그리고 책과 잡동사니들이 모두 들어간다. 가전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노트북, 카메라, 밥솥, 청소기, 선풍기 정도가 전부다. 노트북과 카메라는 밥벌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고, 선풍기는 지난 여름 우리 집에 죽치고 살았던 친구들 때문에 들여놓았던 것이다. 그 밖에 갖고 있는 소지품들도 매한가지다. 시계도 한 개, 패딩도 한 개, 코트도 한 개, 청바지도 한 개, 귀걸이도 한 개. 매일 같은 시계를 차고 매일 같은 귀걸이를 하는 것이 단조롭게 느껴지는 순간도 물론 있지만, 보통의 날들에서는 그 단순한 과정이 나에게 알 수 없는 해방감을 준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비단 물건 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나 일을 함에 있어서도 비슷하다. 불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거추장스러운 인간관계들을 습관처럼 카톡 목록에서 숨김을 하거나 차단을 하는 것, 연락처를 지우는 것, 돈을 많이 주는 일이라고 해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 소진될 것 같은 일은 거절하는 것. 내가 정말로 귀애하는 것들에 에너지를 쏟음으로써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크게 소진되지도 않고 충분한 만족감과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때로는 이러한 삶의 방식이 내 나이 또래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들도 있다. 20대가 분명한 취향과 방향성을 갖고 끊임없이 채워나가는 시기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처럼 비워내고 비워내 삶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은 40~50대에 가서 해야하는 일은 아닌가 따위의 생각들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헨리 데이빗 소로우도 20대에 손도끼 한 자루만 덜렁 들고 월든 호숫가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내가 삶의 골(정수)를 취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해야한다는 이윤기 선생의 말을, 법정스님과 에리히 프롬의 부드럽지만 단단한 문장들을 떠올리며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려고 한다. 내 몸에 잘 맞는 방식으로 삶의 정수를 취하며 살고자 하는 노력 그 자체만으로도 괜찮다고, 잘 살고 있는거라고 말이다.

 

 

내가 사는 곳에 있는 유일한 가구, 책상과 의자. 때로는 밥상으로 때로는 두꺼운 천을 깔고 다리미판으로 사용한다. 

인터넷에서 30,000원을 주고 샀는데 다용도로 발군해주고 있다. 기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