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파랑새 2020. 11. 16. 18:19

1. 화성에 이어 서울 출장을 다녀왔다. 특히 서울 출장은 사무실의 일손이 모자라 취미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선배에게 부탁을 하게 됐는데 흔쾌하게 응해주셔서 참 감사했다.  선배 덕에 홍대 근처에서 맛있는 라자냐도 먹어보고 오랫만에 언니를 볼 수 있었고 더불어 서울 오나다도 구경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선배와 함께 일해볼 수 있는 기회 그 자체가 생겨 참 기뻤다. 선배는 20년 가까이 사진을 업으로 삼으면서도 지치거나 닳은 기색 없이, 외려 '시간이 갈수록 본인의 일에 점점 더 애정이 커진다'며 '기회가 닿는 대로 끊임없이 사진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어떤 태도로 현장에서 임하는 지를 볼 수 있어 많은 공부가 됐다. 홍대에서 촬영장을 오가는 차 안에서 적잖은 이야기를 나눈 것 역시 좋은 공부가 되었다. 선배의 말이나 제스츄어가 누군가에게는 허세스럽다거나 투박하게 비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안에 담긴 진정성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알겠다. 

 

2. 독서모임이 오랫만에 생기 있었다. 특히 20살의 어린 친구가 들어온 것이 나로서는 매우 기뻤는데 그 친구가 가진 특유의 날카로운 사고가 같은 자리에 있던 이들에게 꽤 묵직한 망치질처럼 다가온 것 같다. 실은 나 역시도 10년여간 책 모임을 해오면서 언제부터인가는 나태하게 책을 읽고 사람들과 치열하게 만나지 못했는데, 그런 쾌쾌 묵은 관성들이 그 친구와의 만남으로 순식간에 깨져버린 것이다. 도현과 이라가 함께 해준 것 역시 매우 좋았다. 실은 그 두 사람이 이번 모임에서는 가장 단단한 기둥 역할을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 자체가 너무 오랫만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참 기뻤다. 모임이 끝나고는 함께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고, 도현과 이라와는 수목원 산책을 함께 하고 미술관 관람도 할 수 있었다. 행복했다.

 

3. 선배와는 우리 집 근처에서 만났다. 며칠 간의 누적된 피로 때문인지는 몰라도, 대화의 아귀가 묘하게 맞지 않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나는 통 선배의 말에 집중하지 못했고 꾸벅 꾸벅 졸았다. 선배는 맥주집에서 너무나도 시원찮은 농을 던졌는데 그 말을 듣고 내가 "이거 완전 또라이네"라고 말하고 말았다. (그리고 바로 후회함.)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선배가 손을 잡았고 마음이 혼란해졌다.  다음 날, 선배 따라 산책을 조금 멀리 다녀왔다. 일전에 선배에게 이야기를 들었던 분들을 만나 멋진 밥상을 대접받고(?) 왔다. 돌아오는 길에 선배가 또 손을 잡았고, 손을 잡은 채로 천변을 따라 조금 걸었다.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이야기 할 수 없는 것들은 더욱 많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서로를 위해 무엇이 현명한 태도인지 아직은 또렷하게 알 수 없어 우선은 지켜보기로 했다. 

 

 4. 오랫만에 그 공간에 다녀왔다. 생각보다 마음은 고요했고 차분했다. 신경쓰일 법한 사람들이 그 공간의 수 많은 벽돌 중에 하나인 것 마냥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 분명히 알겠는 것은 그 곳이 아주 좋은 기운으로 넘치는 공간은 아니라는 것. 오래 보고 지낼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좋은 기운을 채울 장소가 조금은 달랐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얼굴들을 본 것은 너무도 좋았다. 특히 언니들. 언니들의 밝은 얼굴을 보는데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