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파랑새 2022. 2. 13. 09:28

1. 경멸하는 인간이 내 메신저를 염탐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는데 기분이 매우 더럽다. 똥통에 처박히면 이런 기분이려나. 온 몸에 소름이 돋고 진저리가 난다. 그와 어떤 방식으로도 엮이지 않기 위해 이미 여러차례 연락처도 바꿨는데 어떻게 또 귀신같이 알아낸건지 모르겠다. 징글징글한 거머리같다. 어쩌면 이 블로그도 찾아내 염탐하고 있으려나? 

 

그 자는 살면서 만나본 인간 중에서도 가장 저질인 부류의 인간이었는데 (사실 인간이라고 부르는 자체가 수치스러우며 난 그 자가 바퀴벌레만도 못하다고 생각하다.) 근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만큼 거지같은 인간 유형은 겪어본 적이 없을 정도다. 

이름을 제외한 모든 신상정보(나이, 출신학교, 하는 일 등)를 거짓으로 꾸며내는건 기본이요, 지저분한 이성관계는 더욱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온갖 혼탁한 짓들을 다 하고 다녔다. 강한 자에게 정체가 발각되면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고, 상대적으로 약한 자에게 발각되면 그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온갖 비열한 형태의 폭력을 동원했고 그것으로도 저지가 되지 않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폭력을 자행했다. 그리고는 외쳤다. "이 모든 일은 네가 자초한 것이며 나는 죄가 없다. 나는 신에게 용서를 받았다. 난 깨끗하다."

그 자가 스스로를 깨끗한 사람이라고 항변할 때, 그의 발 밑에는 피투성이, 만신창이가 된 채 정신을 잃고 쓰러진 피해자들이 있었다. 

나는 아직도 내 목에 닿던, 조금만 힘을 주면 곧 피부 안으로 파고들 차갑고 예리한 식칼 끝을 기억한다. 칼이 지나간 자리에 흐르던 피와 상처들을 기억한다. 내가 울 때 그 자가 기뻐하며 눈물을 글썽이던 것을 잊지 못한다. 

 

멍청, 비겁, 교활, 자기중심적, 위선, 피해자 코스프레, 가스라이팅, 게으름, 나태, 피해의식, 미성숙의 전형...   그는 여전히 멀쩡한 정상인 코스프레 하면서 산다. 심지어 그 자는 결혼을 했고 갓 태어난 딸도 있다. 하지만 장담할 수 있다. 그 자는 좋은 남편도 좋은 아빠도 될 수 없다. 성찰이라던가 염치라던가 하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기능을 탑재할 수 있는 사양이 안되는 생물이라 그렇다.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가짜가 진짜가 되진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다 몰라도 나는 기억한다. 네가 내게 했던 짓들을, 네가 했던 온갖 더러운 짓들을. 난 네가 결국 업보를 결국 제대로 치르리라 믿는다. 네가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남겼던 씻지 못할 상처들이 고스란히 너에게 돌아갈 것이다. 두 번 다신 내 삶에 얼쩡거리지 말라.

 

2. 그 자를 떠올리다보니  살면서 만난 여러 인간들에 대한 기억이 고구마 줄기의 고구마처럼 줄줄히 매달려 나온다. 전부 수준 이하의 인간들이다. 생각보다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이 많다.

 

그런 인간들과는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으로도 접촉과 교류를 하지 않는 것이 '생명'과 건강을 위해 유익하다. 썩은 고구마는 어떻게 해도 구제할 방법이 없다. 싹이 트지도 않고 삶아 먹을 수도 없다. 먹고 아프면 나만 손해다. 구제가 안 될  유형의 인간들과는 빠르게 손절치는게 상책이다. 가능하다면 싸울 필요도 없다.  똥과 맞서봐야 내 몸에 똥만 묻으니까. 하지만 싸워야 한다면 이겨야 한다. 적당히 이기는게 아니라 제대로 이겨야 하고 그 뒤엔 나도 깨끗하게 씻고 그 자리 역시 깨끗하게 청소해야 한다. 

 

3. 

- 세상엔 구제불능이 매우 많다. 

- 구제 불가능한 요소가 하나라도 있는 인간과는 거리조절 한다. 특히 이성적으로는 절대 얽히지 않는다. 모르겠으면 오래 두고 본다.

- 이성적이어야 한다. 어제 내가 흥빈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자. 자기 자식 학대하고 방치하는 부모들도 다들 저마다 이유가 있다. 제 새끼를 아끼면서도 그렇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심정적으로 이해가 간다고 그들을 성숙한 부모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들이 자식을 학대한 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제어할 수 없는' 감정적 역동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휩쓸려 가는 것을 합리화시켜주지 않는다. 어른이라 함은 그걸 회피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하고 견디며 어른된 자세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이어야 한다.   

- 나의 삶을 튼튼히 쌓아올리자.

- 생각보다 '무해'하게 사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자신에게도 무해하고 타인에게도 무해하려면 아주 많은 성찰과 성숙이 요구된다.

 

4. 얼마 전 차단을 한 이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그는 본인에게 힘든 일이 있어 이야기 나누고 싶다며 전화를 부탁한다는 문자를 남겼다. '힘든 일'이라는 단어에 순간 가슴이 벌렁거렸으나 결국 또 차단을 해버렸다. 그 자의 행태가 마치 대문 안으로 발 하나를 잽싸게 밀어넣고 어떻게든 문을 열게 하려는 방문 판매상의 수작같이 느껴진건 내가 너무 시니컬해진 탓일까? 더 이상 어떤 방식으로도 연락하고 싶지 않다는 내 의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참으로 이기적인 짓이라고 생각된다.  

1~3에 대한 글을 적고 다음 날 일어난 사건이었기 때문에 나는 아주 빠르게 손절을 쳤다. 내가 보기에 그는 구제불능이며 어떻게 해서든 엮이지 않는게 답이고, 전화를 받아주는 어쩌면 사소할지도 모르는 행동 하나가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는 덫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에. 에리히 프롬의 '선택'에 대한 아주 멋진 지적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