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런 밤을 보내며
1. 다시 묵묵히 버텨야하는 밤이 왔고 나는 여느 때처럼 꽤 긴 시간을 침대 위에서 혼자 뒤척이며 눈물 훔치고 불안해했다. 평소 좋아해서 달고 살던 노래들 조차도 귀에 들어오지 않아 더 어쩔줄 몰라 하다가, 그러다가 새벽이 밝았다.
2. 나에게 연애란건 사치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다시 엄습하고, 도망가고 싶고, 내 선택이 섣부른건 아니었나 두렵다. 더 이상은 상처를 입고 싶지도 않고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은데, 마냥 좋다가도 갑자기 차갑게 식어 뒤돌아 떠나는 상대방 뒤에서 힘들어하고 싶지 않은데, 만남은 우연이지만 헤어짐은 필연이라는 무거운 사실 앞에서 가슴 무너지고 싶지 않은데,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이젠 다치고 싶지 않은데, 배신감에 치떨고 싶지는 않은데, 언젠가 다시 이 모든걸 겪게 될까봐 너무 많이 무섭고 불안하다. 그럼에도 수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나지막한 목소리를 믿고 가보기로 마음을 가다듬는다.
3. 가까운 친구가 묻길, 오랫동안 알고 지내오던 사람들의 마음도 단칼에 끊어내더니, 연애라는 말만 들어도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경끼를 일으키더니, 꽤 오랫동안 연애를 쉬면서 너 좋다 하는 사람들에게 온갖 핑계대면서 거절해오더니 대관절 이번엔 무슨 바람이 불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연애를 시작하는지, 자긴 그게 너무 궁금하단다. 그러게,하고 웃고 넘기긴 했는데 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나이와 사람의 성숙도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 쯤은 앞선 연애로 충분히 잘 배웠지만, 지금 이 사람은 내가 만나온 어떤 이보다 어른스럽고 단단한 것 같아 사실 가끔은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건강하고 담백한 사람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아끼고 배려받는다는 것은 이런거구나,라고 느끼는건 사실상 나로썬 처음이라 지금 이 느낌이 내게 너무 과분한건 아닌가 싶은 순간도 있고. 뭐 그렇다. 이게 연애 초기라서 그런건지 아니면 이 사람의 품성 자체인지는 시간을 두고 더 지켜봐야겠지만서도. 어쨌든 그래서 이 사람하고는 천천히 오래 지치지 않고 가고 싶어서, 빨리 뛰어가고 싶은 마음을 달래고 달래게 되고, 보폭을 줄이게 된다. 나도 건강하고 담백하고 좋은 기운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힘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