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머무를 이야기

너에게 배운 사랑

파랑파랑새 2023. 1. 18. 05:21

1. 너를 만난지 여덟 해가 지난 지금에서야, 네가 나에게 줬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어.

정말 많이 사랑했고 고마웠어. 언제나 너의 건강과 행복을 빌어.

 

2. 남자친구와 긴 통화를 하던 도중에 중요한 어떤 사실을 깨닫고 펑펑 울었다. 내가 그의 전 여자친구를 부러워했다는 것, 질투했다는 것,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아닌 그 사람을 더욱 신경쓰는 남자친구를 보며 자존심이 상했다는 것. 그러나 자존심 때문에 결코 꺼내놓지 않았던 마음들이었다.

마음 속에 깊이 박혀있던 말들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마음 속에 세찬 비가 내려 상처 주위의 지저분한 것들을 모두 씻어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펑펑 우는 나에게 남자친구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 때문에 이렇게 상처받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였다. 그랬구나, 몇 달 전의 나는 부러웠고 질투했고 자존심이 상했었구나. 그래서 그토록 괴로웠구나. 

그저 그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에 대한 대가를 오롯하게 내가 치르는 것처럼 느껴져서 괴로워한다고만 생각했다. 관계 안에서 오는 고통과 책임을 나만 감당하는 것 같을 때, 남자친구가 자신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고 느낄 때, 외로웠고 서러웠고 애달팠다. 그러나 그 이면에 더 깊은 마음들이 있었다는 것. 그것이 입 밖으로 발화되는 순간 가슴이 후련해지고 시원하게 뻥 뚫리는 느낌이 들며 몸도 마음도 훨씬 가벼워졌다.

 

3. 가슴 한 가운데 못이 박힌 개구리가 계속 떠올랐다. 이상한 생각같지만, 개구리가 자존심의 형상화된 이미지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4. 그는 자신을 이렇게까지나 좋아하고 예뻐하는 사람은 살면서 처음이라고 하였다. 그 말이 나의 마음을 쓸쓸하게 만들었다. 그는 사랑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어떤 태도로 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감이 없잖다. 왜 앞선 관계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해야 하는지, 왜 소중한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 단호하고 냉정한 태도가 필요한지 전혀 모르는... 나이브한 그는, 내가 남자와 단 둘이 술을 마셔도 괜찮고, 전 연인을 만나고 와도 괜찮다고 말한다.

멍청하다. 그가 그렇게나 쿨하게 말할 수 있는건 내가 그에게 불안할 여지를 전혀 주지 않기 때문에, 본인이 허락해도 내가 그런 골치 아픈 상황을 전혀 만들지 않을 사람이라는걸 잘 알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는 새까맣게 모를 것이다. 

 

5. 말이 아닌 행동을 보고 판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