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일주일만에 처음으로 생긴 여유시간. 그것도 주말 새벽에 한 시간 남짓한...
뭘 할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그냥 푹 쉬기로 했다.
연말에 깨작거리며 읽던 책의 결말을 보겠다며 호기롭게 책장을 열었지만, 곧 덮었다. 대신 따듯한 물로 씻고 조성진 님의 연주를 들으며 와인을 마시기로 결정.
이것들이 요즘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이다.
우선 첫 번째는 따듯한 물로 목욕하기.
따듯한 물에 깨끗하게 씻고 보송보송하게 몸의 물기를 닦는 것, 젖은 머리를 말리고 얼굴에 크림을 바르는 것, 정돈된 방 안에 들어와 천천히 스트레칭을 하고 눕는 것. 사무실에서 일주일 동안 꼼짝없이 밤을 새가며 일을 했을 때, 잠을 자지 못한 것보다 더 힘들었던 것이 씻지 못해서 나는 악취였는데 그 때 이후로 몸을 씻고 정갈하게 하는 시간들이 귀하게 느껴진다.
둘째는 와인과 브리치즈, 토마토.
세 가지 모두 평소 좋아하지 않았고, 평생 좋아할 일이 없을거라 생각했던 음식들인데 신기하게 입맛이 변했다.
와인에는 일자 무식이지만, 몇 가지 와인을 사다 먹어본 결과 스위트한 것보다는 드라이한 것이 내 입맛에는 더 맞다는 걸 발견했다. 최근에 내 돈 주고 사다 마신 와인들은 몬테스 알파 카버네 소비뇽와 피노누아, 파즈 말벡. 연말에 선물로 받았던 1896도 신나게 마셨던 기억이 난다.
브리치즈는 제조사와 상관없이 다 좋아하는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프레지던트 사에서 나오는게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토마토는 일 년 중 이 맘 때(1월~3월 초) 나오는 것들이 가장 맛있는 것 같다. 대저 짭짤이 같은 단단하고 당도 높은 토마토를 먹다보면 여름에 나오는 크고 물 많은 토마토들은 뭔가 시시하게 느껴지곤 해. 비싸도 많이 먹어둬야지.
마지막은 조성진 님의 피아노 연주.온 종일 쇼팽 발라드 4번을 끼고 산다. 나와 동시대에 희대의 피아니스트가 나왔다는 사실이 무척 기쁘고, 그가 갖고 있는 탤런트와 숨은 노력들에 무한한 박수와 지지를 보낸다. 1월 14일에 대전에서도 조성진 님의 피아노 연주가 있다는데, 그 사실을 공연 열흘 전에 알아버렸으니 표 구하기는 이미 글렀다. 방법이 없으니, 우선은 아쉬운 대로 앨범만 주구장창 들을 수 밖에. 그래도 행복하다.